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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이야기

파마하고 기인이 됐다 샤워하고 거울을 보니 웬 기인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나이에 걸맞지 않게 머리카락의 자라는 속도가 미용실을 한 달만 걸러도 귀를 덮어버리고게다가 듬성듬성 돋아난 흰 머리카락까지 가세해 볼썽사나운 꼴로 변해 버린다.마르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미용실을 찾았다.그런데,“선생님 염색과 파마를 한번 해 보세요 훨씬 젊어 보일 거예요” 순간,파마라는 말에 흠칫 놀라며 잠시 고민했다.파마머리가 어울릴까 걱정도 앞서고 해서, 어느덧, 내 머리카락도 젊음을 위장할 때가 되었나 보다.젊어진다는 말로 유혹하며 염색과 파마를 권유받을 나이가 되었나 보다.그동안 애써 태연한 척 나이 들어서 나오는 흰머리가 아니고 새치임을 강조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 새치라고 우기기에는 겨울철 흰 눈을 뒤집어쓴 것 같은 머리카락이 인정.. 더보기
남쪽으로 튀어 샤워하고 나오니 갈아입을 속 옷이 없다. 보따리에 넣어 온 3벌의 속옷이 모두 검은 봉지 속에서 땀 냄새를 풍기며 구겨져 있다. 결국, 여행의 일정을 계속하려면 속옷을 꺼내 빨아야만 했다. 몇 번을 왔는지 기억나지도 않은 남해를 또다시 찾은 것은 단순히 남해의 아름다움에 이끌려서가 아니었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차고 있는 남해를 다시 찾은 것은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였다.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샐 줄 모른다고 했던가? 내가 꼭 그 모양이었다. “우리 여행 다녀올까?” “어디로?” “글쎄 어디가 좋을까? 당신 가고 싶은데 있으면 그리 가자 ” “내가 아는 데가 있어야지 가본 곳도 없고 ,” 그녀의 말에 잠깐 생각에 잠기다 남쪽 바다로 3박 4일 일정을 계획.. 더보기
두 얼굴의 특별시 무료함에 무엇을 할까 궁리를 하던 중 며칠 전 TV에서 보았던 서울 풍물시장이 생각났다. 옛날 황학동 벼룩시장이 풍물시장으로 탈바꿈하고 난 뒤 아직 가보지를 못했기에 집을 나왔다. 대학 시절 학교가 청계천과 멀지 않아 공학과 학생들에겐 제집 드나들듯 했던 세운상가와 청계 8가, 그 시절에는 시간만 나면 달려가서 좋은 물건도 싸게 사는 횡재를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사뭇 궁금증이 앞섰다. 주말인 탓에 앞 차량의 꽁무니를 쫒아 얼마를 갔을까? 그런데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근처를 몇 바퀴 돌다 겨우 주차하고 나오니 동묘공원이 눈에 띄었다. 동묘공원, 이곳은 중국 고대 촉한의 장수 관우가 모셔진 사당으로 알고 있다. 관우가 조선의 장수에게 도움을 주었다 하여 은공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는 조선.. 더보기
드라이브 코스 이만한 곳 없다 고흥엔 잘 안 가시죠? 남도 땅 끝자락 고흥은 동서 쪽 여수와 완도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서 완도와 여수의 유명세에 밀려 상대적으로 여행객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특히 군 차체가 다도해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지역임에도 농경지가 쓸데없이 큰 탓에 바다를 보려는 여행객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구석구석 찾아다녀보면 머물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 이런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남도의 바다를 가지고 있는 다른 지역보다 더딘 발전을 보여주는 곳이 고흥이다. 그러나 인산인해를 이루지 않는 한적한 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고흥만 한 곳이 없다. 이렇게 큰 맘먹지 않으면 가기가 쉽지 않은 고흥이지만 그러나 여수와 고흥을 이어주는 77번 국도가 개통되면서 고흥으로의 접근성이 훨씬 쉬워지고 더욱 알찬 여행 일정을 잡기가 유리해졌다.. 더보기
은퇴 그 후..... 불교 언어에 公案(공안)이란 것이 있다.이른바 화두와 같은 것인데 “부처가 무엇인고?” 물었는데 “뜰 안의 잣나무요!”라는 식의 다소 동문서답 같은 말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다.주로 일화 등을 빌어서 화두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요즘 나의 화두는 “사는 게 무엇인가”이다 누군가 이런 화두를 내게 던진다면 나는 다소 엉뚱하게 “죽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뜬금없지만 나의 화두 속에는 늘 죽음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물론 신체적 죽음이 아닌 정신적인 몰락 즉, 죽어버린 내 정신세계를 말함이다.아침에 출근을 하여 네 시간, 그리고 점심 식사 후의 네 시간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리듬의 삶,이 행로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부여되는 의무이기에 대개의 경우 모든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수행해가며 산다.그런데 이런 정.. 더보기
다시 시작한 사랑 봄이건만 여름 더위가 괘씸하게 느껴지는 오월 초순 미친년 널뛰듯 오늘은 또 쌀쌀함을 갖췄다. 비까지 동반한 봄인 듯 봄 같지 않은 날에 그녀와 재래시장을 찾았다. 얼갈이 배추와 열무 몇 단 그리고 시장 표 수 제빵 두 봉 비 내리는 시장 바닥을 걷다 보니 바짓가랑이 까지 흠뻑 젖어 발걸음이 불편했지만 비는 우리 두 사람 사이를 더욱 가깝게 어깨를 마주하고 걸을 수 있는 선물이었다. 그녀의 집에 마주앉아 사 온 채소를 손질하는 손길에 새록새록 푸근한 정이 쌓이고 비로소 봄의 포근함이 마음속에 내려앉는다. 채소를 소금에 절이고 숨이 죽은 배추를 보며 나 또한 그녀의 마음속에서 소금에 절여져 남은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부드럽고 적당한 간수가 베인 배추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배추 몇 포기 열무 한 .. 더보기
치유 보름 전 낚시에 대한 갈망에 치유를 위한 외도를 감행한 이후 회색 빚 도시의 현란함에 익숙해지는 열나흘또다시 스멀스멀 바다가 눈앞에 아른거린다.그러하여 가슴 한가운데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일탈의 욕망은 어느덧 목구멍까지 기어올라 또다시 외도를 계획한다.이병을 앓아온지도 어언 20년 하고도 몇 년이 더 흘렀다.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을 치유도 하고 참아 보기도 하면서 많은 세월을 지나왔건만 도저히 병세는 나을 기미가 없다.오늘도 어느 때 보다 간절한 통증 때문에 나는 또다시 치유로의 감행을 위해 아내 몰래 침대를 빠져나왔다.오늘이 가고 또 다른 오늘이 교차하는 시간마저 게으름을 피우는 어둠의 가운데,자동차 리모컨 소리가 주차장의 적막을 깨트리는 시각에 치유를 위해 바다로 바다로 자맥질을 시작한다. 오늘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