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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이야기

두 얼굴의 특별시

무료함에 무엇을 할까 궁리를 하던 중 며칠 전 TV에서 보았던 서울 풍물시장이 생각났다.
옛날 황학동 벼룩시장이 풍물시장으로 탈바꿈하고 난 뒤 아직 가보지를 못했기에 집을 나왔다.
대학 시절 학교가 청계천과 멀지 않아 공학과 학생들에겐 제집 드나들듯 했던 세운상가와 청계 8가, 그 시절에는 시간만 나면 달려가서 좋은 물건도 싸게 사는 횡재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사뭇 궁금증이 앞섰다.
주말인 탓에 앞 차량의 꽁무니를 아 얼마를 갔을까?
그런데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근처를 몇 바퀴 돌다 겨우 주차하고 나오니 동묘공원이 눈에 띄었다.
동묘공원, 이곳은 중국 고대 촉한의 장수 관우가 모셔진 사당으로 알고 있다.
관우가 조선의 장수에게 도움을 주었다 하여 은공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는 조선이 자발적으로 건립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관우의 사당을 지으라는 압력에 의해 지어진 곳이다.
지금도 계속 진행형인 강대국의 간섭에 내 나라의 주권마저 주장하지 못하는 설움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뿌리 깊게 박힌 사대주의 정신에 함몰된 다수에게 민족사관의 외침만 공허할 뿐이다.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올바름인지 지식의 체계화에 모자람이 많은 사람이 아직 이 나라의 지배층이라 생각하니 입가에 조소가 흘러나온다.
동묘로 들어가 보려다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출입금지 팻말과 굳게 걸린 대문 빗장을 보고 발길을 돌려 뒤 담길 걸었다.
좁은 뒷담 골목 난전 사이에 눈에 들어오는 

"여인숙 월세방 있습니다"


라는 안내 문구에 안쓰러움이 다가온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이 허름한 여인숙에서 월세를 살며 기거한단 말인가?
특별시에 특별하지 못한 사람들의 고달픈 삶이 여인숙 대문 속에서 세상을 향해 절규하는 것 같았다.
특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잠깐의 짧은 생각에 하늘이 잿빛임은 나의 마음에 동의해주는 것 같아 다소 위안이 느껴졌다.
아침을 거나하게 먹었지만, 어느새 시장기가 느껴졌다.
요즘 들어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
배 속에 아마 거지 너 댓은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 살찌는 게 염려돼서 자제하는데 끊임없이 돋아나는 식욕을 억제할 방법이 없다.
난장 모퉁이 허름한 아니 허름한 것보다 더 초라한 음식점인지 대폿집인지 겉으로 보기에는 알 수 없을 것 같은데 분명 요기거리감이 큼지막하게 메뉴로 쓰여있다.
슬며시 안을 들여다보니 할머니가 꾸부정하게 서서 일을 하신다.
어릴 적 우리 외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인다.
난 이런 곳이 좋다.
특별시에 특별히 맛있는 음식과 특별한 대접을 받는 특별히 비싼 식당보다 초라하고 사람 맛이 나는 이런 곳이 좋다.
음침한 벽에 붙어있는 차림표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

할머니 칼국수 하나 되나요?
아 그럼 되고말고요 ~~

할머니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어느새 뚝딱 칼국수 한 그릇을 말아 내 오신 할머니의 손이 내 고향을 닮아있다.
더운 날씨임에도 뜨거운 국물을 쭉 들이켜니 오장 육부가 횡재하는 듯 사르르 시원함이 밀려온다.
4000원 요즘도 이런 음식값이 있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할머니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건네고 나오는데  괜히 혼자 들어가서 할머니 귀찮게 한 것 같아 미안함이 들었다.
여전히 벼룩시장은 예전과 다름없이 몇십 년 전 그 시간에서 요지부동 정지된 시간을 가리킨다.
불경기 탓인가 노상 바닥에 차려진 노점 헌 옷 좌판이 인산인해를 이룬 채 주인의 2000원 소리에 저마다 좋은 물건 고르느라 찜통더위에도,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도 아랑곳없다.
이렇듯 서울특별시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산다.
특별시의 특별하지 못한 사람들은 오늘도 특별한 삶을 위해 장사꾼들도, 물건을 고르는 사람도 모두 특별함은 남의 나라 얘기일 뿐 오늘도 허우적거리는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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