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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이야기

남쪽으로 튀어

샤워하고 나오니 갈아입을 속 옷이 없다.

보따리에 넣어 온 3벌의 속옷이 모두 검은 봉지 속에서 땀 냄새를 풍기며 구겨져 있다.

결국, 여행의 일정을 계속하려면 속옷을 꺼내 빨아야만 했다.

몇 번을 왔는지 기억나지도 않은 남해를 또다시 찾은 것은 단순히 남해의 아름다움에 이끌려서가 아니었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차고 있는 남해를 다시 찾은 것은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였다.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샐 줄 모른다고 했던가?

내가 꼭 그 모양이었다.  

“우리 여행 다녀올까?”
“어디로?”
“글쎄 어디가 좋을까? 당신 가고 싶은데 있으면 그리 가자 ”
“내가 아는 데가 있어야지 가본 곳도 없고 ,”  


그녀의 말에 잠깐 생각에 잠기다 남쪽 바다로 3박 4일 일정을 계획하고 집을 떠나온 후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런데 남쪽 바다 곳곳이 눈에 익어 별 감흥도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녀와의 3박 4일 일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 가버리고 결국 며칠 더 여행 일정을 늘려 남해까지 가보자고 의기투합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아침 일찍 부산의 숙소를 나와 삼천포를 거쳐 남해 초입에 도착하니 햇살은 이미 이글거림을 과시했고 우리는 남해의 길목 창선대교 위에서 5일째 여행을 이어갔다.

대교 위에서 세찬 조류의 흐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서 여행을 좀 더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전통 멸치잡이 시설인 죽방렴을 궁금해하는 그녀에게 내가 아는 것을 총동원해 설명하는 동안 그런 나로부터 지식을 터득한 그녀의 만족스러운 미소에 긴 시간 운전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전통 멸치잡이 시설 죽방렴(사진출처:남해군)

 

언제던가?

마음 다독이려 죽방렴 앞 방파제 가로등 불빛 아래 바다를 바라보다 자동차에서 웅크린 채 잠이 들었던 때가,

이 세상 모든 시름은 다 짊어진 것처럼 죽기라도 할 것 같은 절망감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묘한 시선을 받았던 그때가,

죽지 못해 산다는 말처럼 그런 시련의 아픔이 깃들어 있는 창선도 바다였는데 이제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하여 죽고 싶게 만들던 바다가 아닌 마냥 아름다운 바다로 내 앞에 유유히 흐르니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살이가 묘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연신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그녀 손을 이끌고 독일 마을로 향했다.

예전의 여행에서는 독일 마을에서 숨어 있는 독일을 느라 눈을 부릅뜨고 발품을 팔았건만 발견한 건 독일 대신 어느 관광지나 다름없는 보기 좋은 경관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녀와의 여행에서 비로소 독일 마을에서 독일을 볼 수가 있었다.

생전 처음 와본다는 그녀의 말에 더 독일다운 독일을 보여 주려 생각을 짜냈고빵집에서, 맥줏집에서, 독일풍의 집들에서 독일의 이미지를 심어 주느라 애를 썼다.

남해 독일 마을은 유신 정권 당시 외화벌이와 경제난 타개라는 이유로 광부와 간호사를 모집해 독일로 보냈는데 그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오지를 못하고 독일에 정착해 사는 것을 경남도에서 이들을 불러들이고 정착할 수 있게 한 것이 지금의 독일 마을이 생겨난  배경이다.

 

몇 번을 와 보았지만 한 번도 그 사람들 겪었을 인고의 삶을 생각해보지 않았건만 독일 마을의 유래를 그녀에게 설명하고 있자니 서서히 아름다움 속에 묻힌 아픔들을 볼 수 있었다.

독일 마을 속 세계의 정원을 산책하는 동안 그녀에게서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각 나라의 주택들을 보고 예전에는 모두 비슷비슷하고 별 특색이 없음을 느꼈다면 이번 여행에서는 각 나라의 집 형태를 보고 좀 더 넓은 세계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었고 집들을 보며 제2의 인생을 어떤 집에서 살면 좋을까? 구상해보는 기회도 되었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알려면 보이는 그것 생각을 더 한다면 같은 풍경 같은 대상이라도 달리 보인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친 것은 독일 마을에서 얻은 여행의 소득이었다.

평소 여행을 안 하던 그녀가 며칠의 강행군 탓에 피로를 호소했다.

금강산도 식후 겸이라고 했는데 배고픔도 모르고 들떠서 무리하게 돌아다닌 탓이었다.

저녁 식사 하려고 하 유명 관광지 치고는 딱히 먹거리가 없는 게 아쉬움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보니 남해의 명물이라는 멸치 쌈밥집이 눈에 들어와 특이한 메뉴를 보고 그 맛의 궁금증에 먹어 보았지만, 개인적인 결과는 실망이었다.

우리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것인지 멸치 특유의 비린내로 인해 단 한 수저도 입안에 넣지를 못했다.

결국, 같이 나온 묘한 국물과 밑반찬 몇 개로 어설픈 식사를 마치고 4일째 여행 일정을 마무리했다.  
눈을 뜨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씻겨진 이유는 늦은 아침 침실을 간지럽히는 커튼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 온  때문이었다.

일기예보의 비 소식에 은근 여행을 망칠까 걱정했건만 비록 늦게 맞은 아침이지만 아침을 맞는 새날은 맑은 하늘이었다.

비로소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안 순간 몸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 피로는 까맣게 잊고 있다.

그러나 오늘 일정을 생각하니 그녀가 걱정됐다.등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산을 걸어야 하고 남해 최고의 절경을 보려면 보리암을 빼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자동차로 산 중턱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걷는 구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감언이설을 곁들여 조심스레 그녀의 각오를 묻자 부담이 되었는지 썩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절경을 보여 주려 애썼으나 그 얼마 안 되는 거리마저 걷는 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 다이 마을만 가보고 여행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동차의 방향을 남해 서쪽으로 잡고 자동차의 창문으로 해풍을 맞아들였다.

보리암 못지는 않지만, 남해 다랭이 마을 또한 바다를 품고 있는 경치가 천하일색이다.

골목골목 사람 사는 모습도 함께 보여주는 다랭이  마을,대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좁은 골목 안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까 연민 반 걱정 반의 안타까움을 보이겠지만 그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오히려 도시인들이 더 딱하고 가엽게 느껴지리라,

삼백육십오일 자동차 소음과 빌딩 사이를 헤집는 회색 바람을 맞으며 삶이라는 고해 가운데 아귀다툼의 전쟁터 같은 삶을 사는 도시인보다삼백육십오일 청량한 파도 소리와 바다에서 불어오는 탄산음료 같은 상큼한 바람을 가슴에 들이며바삐 움직일 수 없는 골목의 삶이야말로 인간의 삶은 물질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랭이라는 명사로 대두되는 삶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 지난날을 살아온 사람들의 노고는 마냥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은 것은 다랭이라 불리는 그 모양이 모진 고생의 결과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구조의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탈진 산자락을 깎고 다듬어 손바닥만 한 논 한 뙈기에 온 가족의 생명줄이 달려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다랭이 마을 바닷가의 파도 소리가 오히려 과거 사람들의 슬픈 울음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다랭이란  비탈진 언덕을 계단식으로 깍아 만든 논을 말한다(사진출처:남해군)

 


몸속 피곤함이 가득 들어 있는 그녀를 이끌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니 반 초주검 생태의 그녀가 귀가를 호소했다.

그러나 나의 이기심은 고속도로 위에 자동차를 올리는 걸 거부하고 남해로 들어갈 때와 반대 방향인 남해 대교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하동 구례를 거처 지리산을 넘어가려는 음흉한 잔꾀를 생각하며 최대한 갈 곳의 아름다움으로 그녀를 유혹했다.  

남해 대교에 도착하자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피로를 호소하던 그녀가 어릴 적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남해 대교를 눈으로 보자  탄성을 자아냈다.

그게 나의 목적이었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에 맞장구를 치며 대교 밑으로 내려가 더 잘 보이는 곳에서 다리에 대한 역사를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다.

남해 대교는 1972년도에 건설된 하동군과 남해군을 연결하는 다리이며 당시에는 다리 건설하는 기술이 없어 모든 다리를 비교적 단순한 거더교 형식으로 건설했는데 기술이 발전해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로 놓게 된 다리라는 것을 궁금해하지도 않는 다리의 역사까지 아는 척을 하느라 머릿속 얄팍한 상식을 총동원했다.  

그리고 역사적인 다리를  건너는 기쁨도 맛 보여 주기 위해 새로 건설된 신 남해 대교가 아닌 구 대교를 건너 하동 땅으로 사부작 거림을 이어 나갔다.

남해대교 전경(사진출처:남해군)

 

하동 땅으로 와서 재첩국을 맛보지 않고서 어찌 하동을 다녀왔다고 할 텐가?때마침 시장기도 몰려와 소박한 재첩 정식 한 상에 하동 맛을 만끽하고 최 참판의 땅을 밟았다.

박경리의 역작 장장 26년에 걸쳐 완간된 토지를 드라마화 한 주 무대의 최 참판 댁,
천일야화가 길다고 하지만 토지와 비교한다는 것 차체가 토지에 대한 모욕이며 유방암 수술 중에도 집필하면서 완성된 작가의 집필 의지는 토지 문학관에서 나를 숙연케 함과 동시에 결국은 올바른 삶이 승리한다는 토지의 작품 속 결과에 다시 한번 어떻게 사는 길이 올바름인지를 깨우치는 계기가 되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문학관 외 토지 촬영장은 과거보다 초가집 이응도 새로 얹고 깔끔하게 정비되어 보기는 좋았으나낡은 초가집 마당의 먼지 날리는 흙을 밟으며 어릴 적 외할머니 집을 떠올리려 것은 나의 욕심이었다.

단지 초가집 싸리나무 문에 매달려있는 명패에서만 서희의 고집과 집념을 느끼고 길상의 정 많고 따뜻한 마음을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최 참판댁을 나오며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자동차를 몰아 전라도 땅으로 넘어갔다.



한 발짝만 앞으로 가면 전라도 땅이요 한 발짝 뒤로 가면 경상도 땅이라그림 대작 문제로 미술계에 대작이라는 관행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조 모가의 노랫말처럼 화개장터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걸쳐있다.

지금은 옛날 민초들의 애환은 세월의 변화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에 화개장터의 상징성에만 의미를 두기로 했다.그리고 아직도 지역감정의 선을 허물지 못하고 있는 이 나라 정치꾼들을 장터에 모두 모아 더불어 살아가는 장터 사람들을 보여주며 산 교육이라도 시키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니 그녀 또한 맞장구를 쳐준다.

장터 국수 한 그릇에 과거를 머릿속으로 끌어들이려 억지를 부려 보았으나 도무지 인산인해의 왁자지껄함은 그녀와 나의 여행을 더욱 피로하게 할 뿐이었다.

많은 인파의 부산함으로 인해 수박 겉핥기 장터 경험을 하고 여행의 피로를 집까지 달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계획대로 지리산 방향을 집 가는 길로 선하고 섬진강변을 거슬러 올랐다.

섬진강

구례를 끼고 함양과 남원 땅으로 넘어가는 지리산 고갯우리나라 도로 중에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도로이다.

지리산 노고단이 눈앞에 있고 굽이굽이 돌아 오르는 산길 도로는 그 묘미가 남달랐다.

꼭대기의 쉼터에 자동차를 세우고 지리산 자락 산 아래 삶이 어우러진 사람들이 사는 곳을 향해 기지개를 켰다.

지리산 아래로부터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오는 한 줌 바람이 허파를 파고드는 순간 여행의 피로 따위는 바람의 상대가 되지를 못했다.

산으로부터 마음이 정화되고 오롯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리산 자락 정기에 감전이 된 듯 등 뒤 더 높은 노고단이 욕심이 났다.

그러나 더 그녀를 이끌고 다닌다는 것은 여행의 피로로 인해 눈에 보이는 그 무엇에도 아름다움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노고단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켜 냈다.

멀리 보이는곳이 구레이다

산에서 내려가는 길을 따라 지리산을 중간쯤 내려왔을까?

두 갈래 길에서 마음의 갈피를 잡기가 어려워졌다.

서쪽 남원 땅으로 가서 춘향의 절개를 놓고 그녀와 입씨름을 벌여 볼 것인가? 아니면 동쪽 함양 땅으로 가서 고속도로 위를 달려 집으로 갈 것인가?

그러나 지친 그녀를 위해  여행을  더 이어 간다는 건 여행의 의미가 없음을 방금까지도 인식했으면서  미련인지 내 마음은 길 위의 여정을 이어 나가고 싶은 욕심이 자제심을 능가하고 있었다.

결국 스마트폰의 지도를 띄워 집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보고  집으로의 느긋한 자맥질을 이어 나갔다.

집으로 간다는 것에 마음을 내려놓은 것일까?옆자리를 힐끗 쳐다보니 조금 전까지도 입으로 여행기를 써대던 그녀의 얼굴이 꿈속에서 여행을 이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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