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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이야기

치유

 

 

 

 

보름 전 낚시에 대한 갈망에 치유를 위한 외도를 감행한 이후 회색 빚 도시의 현란함에 익숙해지는 열나흘

또다시 스멀스멀 바다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러하여 가슴 한가운데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일탈의 욕망은 어느덧 목구멍까지 기어올라 또다시 외도를 계획한다.

이병을 앓아온지도 어언 20년 하고도 몇 년이 더 흘렀다.

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을 치유도 하고 참아 보기도 하면서 많은 세월을 지나왔건만 도저히 병세는 나을 기미가 없다.

오늘도 어느 때 보다 간절한 통증 때문에 나는 또다시 치유로의 감행을 위해 아내 몰래 침대를 빠져나왔다.

오늘이 가고 또 다른 오늘이 교차하는 시간마저 게으름을 피우는 어둠의 가운데,

자동차 리모컨 소리가 주차장의 적막을 깨트리는 시각에 치유를 위해 바다로 바다로 자맥질을 시작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바다의 한편에서 여명을 맞이했다.

새빨간 태양도 오늘 나의 치유를 위한 서막을 열어주며 물결 위에 보석을 흩뿌려 주었고, 난 믹스커피 한잔으로 갯바위에서의 행복을 만끽해 본다.

출렁이는 푸르름을 향해 채비를 날리는 팔에 힘이 솟는다.

온몸에 희열이 솟아오른다.

또다시 통증으로 찾아온 고질병이 치유되는 순간이다.

어느새 정수리 위까지 솟아오른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른 봄의 삭풍을 몰아내고 봄기운 물씬 나는 따사로움으로 저고리의 지퍼를 열게 한다.

순간, 깐죽거리며 파도를 가지고 놀던 찌란 놈이 얄미웠는지 바다가 이놈을 삼켜 버렸다.

찰나에 본능적으로 낚싯대를 잡아챘다.

뒤이어 만만치 않은 무언의 생명체로의 교신이 손아귀로 전해져 온다.

어김없이 녀석이 나의 사기에 걸려들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릴을 감는다.

불면 날아갈 세라 쥐면 터질세라 자식 키우는 어미의 심정같이 당기면 풀어주고 잠잠하면 당겨 주면서 랜딩을 한다.

코앞에 녀석이 와있다.

은빛의 어체가 네게 황홀감을 선사해 준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녀석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녀석은 인간 세상의 찌든 속세에 물들고 싶지 않았는지 최후에 발악을 하며 날 조롱하듯 유유히 자기 갈길을 가버린다. 아뿔싸! 항상 야무지지 못한 성격이 여기서 또 낭패를 본 것이다.

대충 묵어 둔 낚시 줄 매듭이 화근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녀석이 너무도 큰 녀석이라고 위안을 삼고 싶다.

어쩜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놓친 고기가 크다는 말은 꾼들의 허풍인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만큼 녀석이 크고 힘이 세니까 줄이 터지고, 바늘이 빠지고 하는 것이 이기에...

낚시꾼에겐 네 가지 행복이 있다.

찌에 고기의 입질이 전해지는 눈 맛, 고기를 낚을 때의 손맛, 잡은 고기 회 떠먹을 때의 입맛 그리고 낚시 다녀와서 잡은 고기로 허풍 떠는 뻥 맛,

순간 제대로 된 허풍 꺼리다 생각하면서 속으로 아! 정말 큰 놈인데, 하며 아쉬워해 본다.

그렇게 종일 애꿎은 바다에 작은 파장만 일으키며 오늘도 큰 소득 없이 대를 접어야 할 시간이다.

이런들 어떻하고 저런들 어떡하리 물고기 잡아서 연명할 것도 아니고 못 잡았다고 구박받을 것도 아닌데...

그저 바다로 가는 것만도 즐겁고 바다에서 녀석들과의 조우를 기대하는 것만도 행복함인데..

오늘은 운이 따라주질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나의 낚시는 항상 운칠기삼인 것을 되뇌며,

해는 어느새 중천을 벋어나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공수래공수거 올 때도 빈손으로 왔으니 갈 때도 빈손으로 가야 할 것이다.

어차피 녀석들을 잡았어도 오늘은 아량을 베플 심산이었다.

도둑 낚시 이기 때문에 수확물을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페달이 무겁게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어느 중죄인처럼 나는 완전 범죄를 계획해야만 한다.

밤을 새우지 않았으니 상갓집은 패스하고 아니 이젠 살인을 많이 해서 더 죽일 사람도 없다.

머리가 돌지를 않는다. 너무 많이 써먹어서 더 이상 써먹을 게 없다.

오늘은 꼼짝없이 아내 머리에 피어오르는 열기를 느끼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나는 이것마저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꾼이다.

늘 아내와 낚시든 여행이든 동행을 하지만 가끔 혼자 무작정 가고픈 심정을 이해시키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이것이 꾼으로 살아가는 묘미이니까,

이제 치유를 했으니 며칠은 견딜 것이다.

아니 며칠이 아니라 시야에서 바다가 사라지는 순간 아픔은 시작될 것이고 다만 양심상 며칠은 견뎌야 할 것이다.

이렇듯 나의 병은 영원이 치유되지 않을 것이며 통증을 느낄 때마다 물귀신처럼 물을 찾아 치유의 길을 헤맬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은 행복으로 재충전해서 삶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집으로 가는 길에 going home의 색소폰 선율에 catharsis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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