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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여행

완도군(보길도)

 

 

 

지난 여행지의 숙소에서 조식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맘껏 게으름을 피우다 보길도행을 재촉했다.

보길도는 완도 땅 끄트머리 화홍포나 해남 땅끝 선착장에서 여객선이 운항을 한다.
제법 큰 여객선이 약 40분 정도 걸려야 닿는 섬이며 보길도로 바로 가지는 않고
보길도와 연륙교로 연결되어있는 노화도까지 운항을 하는데 결코 가깝지만은 않은 섬이다.
그렇다고 멀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배가 워낙 느리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해서이다.

 

 

 


배가 노화도에 들어서면 약 십여 분 차로 이동을 해야 보길도로 갈 수가 있다.
보길도로 들어서면 여기도 여느 섬과 다를 바 없이 섬 특유의 여유와 한가로움이 느껴진다.
풍경이야 어느 섬이나 다 고만고만하지만 조금만 움직여 보면 멀리 추자도나 흑산도, 가거도 같은 원거리 섬의

웅장함은 느낄 수 없지만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이 물씬 풍겨옴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이 다도해이다 보니 다닥다닥 붙어있는 섬과 섬 사이의 잔잔한 바닷물이 흡사 내륙의 호수 같은 분위기도 연출하였고 해가 질 무렵에는 자그마한 섬 모퉁이에 걸쳐있는 노을이 환상의 자태를 보여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었다.

여장을 풀기 전에 오디오에 아리아를 밀어 넣고 한가로운 섬 일주에 나섰다.
여기도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온 도로를 전세 낸 기분이었다.
제법 큰 섬인데도 자동차의 통행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이따금 주민인 듯한 사람들의 소형 화물차들만 지나다닐 뿐,

해무에 휩싸인 한가로운 섬의 풍광이 아리아의 음률과 더불어 몽롱한 감성을 자아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안내도를 살피다 보니 관광 안내도에 나온 사진이 너무 아름다워 차를 돌려 망끝 전망대로 향했다.
곧이어 나는 그 웅장함에 경건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자연이 스스로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에 의문을 품기에 충분했다.
자연이 저절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마치 인간이 보기 좋으라고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보는듯하였다.
허나, 아무리 심혈을 기울인다하여도 이러한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몇 장 찍어 보았다.
하지만 조그만 카메라로 이 무한 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을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가슴에 새겨 넣기만 해도 벅차고 황홀한 것임을 왜 모르는지....
이 조그만 기게로 이 무한함을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담아낼 수 있는 일부분으로 또 어느 누구에게 이것이 여기의 아름다움이라고 남들에게 보여줄 테지..
내가 자연이라면 참으로 억울할듯하다.
인간이 표현하는 것은 자연의 아주 조그만 일부분밖에 안 되는데 마치 자연의 전부를 보여주는 우쭐함을 보일 테니까 말이다.

 

 

 

보길도,

섬 여행을 할 때면 가끔씩 들르는 곳이기 때문에 나는 이곳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어찌 보면 참 볼품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섬이다.

포구 여기저기 어지럽혀진 어망들, 그리고 드러난 해변 위의 생활쓰레기,

방치된 낡고 녹슨 패 어선, 무엇 하나 섬마을의 아름다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손에 의해 잘 다듬어진 유명 관광지보다는 이런 곳이 좋다.

이런 곳이 솔직해서 좋다.

아름다운 것은 모두 위장일 뿐이다.

진실이 없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음은 눈만을 위한 만족을 줄 뿐 마음의 안식은 얻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나는 이러한 어촌 마을이 좋다.

방파제 뱃전에 앉아 어망을 손질하는 백발노인의 손놀림이 바쁘지 않듯 나 또한 이곳에 오면 느림의 미학에서 한껏 늦장을 부려 봄이 좋다.

새우등을 한 할머니도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는 진실을 손수 증명하듯 아기 유모차에 초라한 몸뚱어릴 의지한 채 걸음걸이가 영락없는 아기를 닮아있다.

그래서 할머니도 아기처럼 길이 무섭지 않고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이런 곳이 마냥 좋다.

 

잠시 섬사람들의 일상에 참견하여 나 또한 어부도 되었다가 해녀도 되었다가 한동안 이들의 일상에 참견하다 보니 어느새 멀리 서쪽 바다의 노을이 초경을 시작했다

 

 

 

익숙한 듯 선착장 앞 민박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객주 아낙이 황급히 설거지하던 손을 치맛자락에 문지르고 뛰어나온다.

 

"오 메 또 오셨소?"

그란디 인자와 혼자 오신 당가?"

 

"예 혼자 다니는 게 편해서요!

잔소리 안 듣고 좋은데요?"

"오메 으짜스까이 마나님 들어 뿔 먼 서운할 틴디~

그래도 늙으면 마누라가 최고에 좋은 데는 같이 다니 쇼이"

 

나는 대답 대신 엷은 미소로 화답하고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란디 식사는 하시었소 이?"

하며

나의 대답을 듣기 도전에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위함인지 다시 부엌으로 바쁘기만 하다.
객주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방문을 닫고 문에 한참을 기대어 물끄러미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다를 바라보다 가슴이 먹먹해져 옴을 느꼈다.

다시는 여기를 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거늘 내 발걸음이 섬으로 또다시 몸을 이끌고 있었다.
김유신이 자신에 애마의 목을 단칼에 베듯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그 무엇이 있다면 나 또한 내치고 싶은 심정일뿐이다.

방에 누워 한참을 멍하니 천정 벽지 무늬를 바라보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 발걸음을 돌려 갯벌로 향했다.

오늘 밤 섬에서의 하룻밤이 순탄치 않을듯해서이다.

귓전을 때리는 파도소리와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올 달빛이 밤새 가슴을 때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극복해야 한다.
고독도 슬픔도 이제 극복해야 한다.

난 오늘 밤을 소주 한 잔으로 극복하기로 했다.

그리고 안줏감이나 마련해볼까 해서 갯벌을 찾았다.

다행히 썰물 때라 갯벌은 자신의 치부를 몽땅 드러내 놓고 있다.

얼마나 등을 굽히고 갯벌을 헤맸을까?

물 빠진 갯벌 작은 웅덩이 안에 무언가 생명체가 홀연히 작은 돌멩이 뒤로 몸을 숨긴다.

난 재빨리 돌을 들춰내고 놈을 움켜쥐었다.

낙지란 놈 어지간히 재수도 없는 놈이다.

드넓은 갯벌에 사람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을 터인데 자기보다 다리도 많지 않은 인간에게 잡혀 생을 마감하게 생겼으니,

아니나 다를까 놈은 억울한 듯 모든 다리를 이용해 부처님 손바닥을 빠져나가고자 안간힘을 쓴다.

난 놈을 검은 봉지에 넣고 다시 갯벌 정복에 몰두했다.

이어 주먹만 한 붉은 소라가 눈에 들어온다

움직이는 건지 쉬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놈에는 틀림이 없다.

해양생태를 공부했지만  소라라는 놈에대해서는  확실히 아는것이 없없다.

 

낙지 한 마리, 소라 두 개, 그리고 포구에서 얻은 전복 두 개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이것만 가지면 오늘 밤은 나의 주량인 소주 한 병은 거뜬할 것 같았다.

 

어둠이 이 노을을 삼켰는지 노을이 어둠 속에 숨었는지 어두워져 가는 하늘이 재미가 없다.

노을 없는 저녁 바다가 싱겁기만 하다.

덩달아 소주 맛도 싱거울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머리가 무겁다 방바닥 접시 위의 낙지다리 하나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끝까지 접시에 붙어 흐트러짐이 없다.

소라 두 개 전복 두 개 그리고 다리 한쪽만 남겨놓은 낙지 한 마리 그 옆에 누워있는 소주 두 병, 두병,

어쩐지 머리가 무겁다 했다,

그렇다 나의 주량을 초과한 소주병이 하나 더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 머리가 더욱 무거운 이유였다.

객주 여인의 인기척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찬물로 얼굴을 씻고 해산물로 가득한 아낙의 늦은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다음 행선지는 이곳에 온 주 목적인 400여 년 전 어부사시사의 집필지였던 윤선도 원림을 향했다.
윤선도 원림은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구경할 수가 있다.
우선 고산 선생이 살림을 했던 낙선재,그리고 동천석실,제일 아름다운 세연정
세연정은 집 앞의 세연지라 부르는 개울을 막아 정자를 만들고 세연정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당대의 최고 시인인 고산의 유적지이기에 문학을 사랑하고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러봐야 할 곳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가 이곳에서 집필되었기에 보길도 어부들의 삶이 고스란히 보이는것 같았다

 

 

 

한참을 돌아보니 어느덧 땅거미가 져왔다.
나는 서둘러 오늘 밤 하루 노숙 준비할 곳을 찾아 여기저기 헤메이다 어느 한적한 방파제 한켠에 캠핑을 준비했다.

전날 객주의 푹신한 잠자리에 그새 녹아든 것인가?

간밤의 노숙은 밤새 뒤척이며 파도소리가 잠을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바람 탓인지 아님 나의 고독 탓인지,
그렇게 방파제를 베고 누운 침낭 속의 긴 밤은 쉽사리 나를 단잠으로 이끌지 못하였다.
멀리 다도해 어느 섬 꼭대기에서 붉은 여명이 올 때까지 파도와 하염없는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겨우 눈을 비비고 텐트에서 나와 커피를 내리고 있자니 태양은 어느새 눈높이 위까지 차 올랐고 라면 하나로

허기진 배를 겨우 달래며 섬에서의 또 하루를 열었다

 

 

 

오늘은 또 어디를 갈 것인가
어디를 가도, 그 어떤 아름다음을 보아도 눈으로만 보일뿐 마음으로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또 어디를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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