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섬 여행

그 섬을 아시나요?

어슴푸레 동쪽 하늘부터 여명이 밝아오더니 드리워놓은 낚싯대에 해가 걸려 올라온다

새벽의 물안개에 젖은 남자는 방금 물에서 나온 것처럼 머리카락에서 뚝뚝 물방울이 떨어진다

조용한 바다의 물 위에서 게으른 파도가 한심하다는 듯 남자를 보며 커다란 기지개를 켜고

바람결에 잠에서 깨어난 파도 소리 물안개 속을 배회할 때

남자는 허무만 한가득 들어있는 어망을 걷고 다문다문 머물렀던 섬을 등진다


 

 

1년에 서너 번은 낚시 여행 겸 쉬러 다니는 섬이 있다.

전남 진도군 관내 조도인데 행정구역상 진도군 조도면으로 조도 군도로 이루어진 몇 개의 섬 중 가장 큰 면 단위의 작지 않은 섬이다.

필자는 이십여년 전부터 이 섬을 다녔는데 이 섬 또한 개발의 논리 속에 점점 변해가고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며 자연 훼손이라는 문제에 봉착했다.


 

예전 모 방송국 일박이일에 소개되었던 관매도로 가는 객선이 경유하는 곳이기도 한데

조도 여행을 끝내고 관매도까지 들러본다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리 유명하지도, 특별히 원도권의 섬 들처럼 천혜의 비경도 많이 없지만 구석구석 다녀보면 마음을 정화 할 수 있는 요소요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섬이다.


조도 대교아래에서 바라 본 호수같은 바다

 

수도권에서는 한번 다녀오기가 만만치가 않지만

그러나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흔한 말처럼 한번 다녀오면 꼭 다시 가보고 싶은 섬이다.

조도를 들어가려면 세월호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팽목항(진도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소요시간은 약 40여 분 정도 걸리며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가는 게 섬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고 불편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조도군도는 다도해 국립공원에 편입되어 있으므로 배가 운항하는 동안 주변 크고 작은 섬들과 흡사 육지의 호수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다 보면 아쉬움 속에 하조도의 창유항에 도착한다.

여행이란 이처럼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급하게 달려가서 마음 내려놓고 유유자적 거릴 틈도 없이 사진만 찍어 오는 게 아니라 오가는 과정 또한 오롯이 가슴에 담고 나를 찾는 계기가 된다면 좀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조도는 상조도와 하조도 두 개의 섬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두 섬 간에는 다리가 놓여있어 더욱 많은 볼거리를 선사한다.

필자가 이 다리를 건넜을 때는 노을이 막 물들 즈음이었는데 아치형의

다리를 넘는 순간 견우직녀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이어준 오작교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단순히 다리를 건너 다른 땅으로 건너온 게 아니라 오랫동안 그리워만 하며 갈 수 없었던 임을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많은 섬을 다녀왔지만, 조도처럼 포구 마을마다 여행자를 위한 깨끗한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는 곳을 본 적이 없다.

그리 잘 알려지고 유명한 섬이 아님에도 여행객을 배려하는 흔적을 볼 수 있어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또한,여기저기 선창 마을마다 각종 어구가 무질서하게 널려있기도 하지만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민들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에 무질서함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이 엿보인다


하조도에서 배에서 내려 두 개의 다리를 건너 상조도로 넘어가면 조도에서 가장 큰 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돈대산 도라산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100여 개가 넘는 조도군도 해상 국립공원의 비경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섬들의 웅장한 군무를 보는 듯하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 본 다도해


돈대산을 내려와 상조도 곳곳을 탐방하다 보면 아담하고 조용한 포구들이 예닐곱 개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낚싯대를 던져놓고 사색에 빠져봐도 좋을듯하다

어디를 가도 낚싯대만 던지면 우럭 등등 먹을만한 물고기들이 낚싯줄 끝에 달려 나오니 낚시 기술이 없더라도 횟감은 충분히 잡을 수 있다.

필자는 감성돔 낚시를 좋아해서 상조도와 하조도를 잇는 대교 밑에서 감성돔 낚시를 가끔 하는데 갈 때마다 만족한 조과를 얻어오고 있다.


 

상조도를 탐방한 후 조도 대교를 건너 다시 하조도로 넘어오다 보면 손가락 산이라는 묘한 이름의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중 손가락을 닮아서 손가락 바위라 이름 붙여진 곳이 있다.

필자 생각은 그다지 손가락을 닮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아무튼, 손가락 바위를 올라가 보면 감탄을 금하지 못하게 된다

산 중턱에 협소하지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굳이 등산복 차림이 아니더라도 쉽게 한 20여 분이면 오를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건 산 정상에 손가락 바위 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에서 다도해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다도해의 풍광이 가슴 벅찬 황홀감을 주기에 전혀 손색이 없고 하산해야 하는 것이 무척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동굴로 들어가려면 수직의 바위를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해서 노약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안타까움이 든다.


동굴 안에는 두 사람 정도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섬 근처가 세월호의 아픔이 있는곳이다
동굴로 올라가는 입구 밧줄을 타고 가야한다

 

손가락 산에서 내려와 신전해변으로 가는 게 탐방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코스이다.

섬 중앙의 깨끗하고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섬치고는 큰 마을이 지나가게 된다 그런데 유독 많이 눈에 띄는, 도시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 옛날 다방이 꽤 많이 성업 중이다.

이동하는 사이 산에 올랐던 피로를 다방에 앉아 옛날 커피 한 잔으로 풀어 보는 것도 운치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식사 전이라면 마을에서 해결하려는 생각은 거두는 것이 좋다.

큰 섬이라고는 하지만 마을에서는 해산물 요리가 그리 유명하고 맛집으로 이름난 집이 없다.

섬이라고 뭔가 거나하고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먹을 계획을 했다면 포기해야 한다.

 

신전해변은 우리나라 여느 해변과 다름이 없지만, 해변을 거닐며 백사장에 퍼질러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것도 좋을듯하다.

또한, 근처에 목넘애라 불리는 몽돌밭이 있어 파도에 몸살을 앓고 있는 자갈들의 울음소리도 나름대로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조도에서 또 하나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조도 등대이다.

등대 입구에 들어서서 안내문을 보면 조도 등대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등대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필자는 예전 어느 등대에서도 그곳 등대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걸 보았는데 조도 등대에도 역시 똑같은 안내 문구가 있어 잠시 의아해했다.

서로 제일이라는 치열한 경쟁이 섬이라고 예외가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여행자마다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조도에서 으뜸가는 아름다운 바다를 꼽으라면 조도 등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등대 아래 까마득한 섬과 섬 사이의 바다가 마치 세차게 흐르는 강물처럼 섬 사이를 비집고 유영하는 모습은 유약한 인간에게는 용기를, 삶의 희망을 잃은 자들에게는 의지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조도 등대에는 우리나라 등대 역사의 중요 시설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조도에는 군에서 지정한 조도 8경이라는 이름으로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지방 자치 시대 이후 너도나도 앞다퉈 지역 이름 뒤에 10경 20경 하며 경치를 알리고 있는데

그 자랑하고 있는 경치가 막상 가보면 어느 지역이나 비슷비슷하고 특별한 아름다움과 차별화를 느끼지를 못하는 게 우리나라 여행지의 현실이다

조도 또한 조도10경이라 이름 붙이고 섬으로의 여행을 유도하고 있지만, 필자가 조도를 보고 느낀 점은 이곳도 우리나라 4천여개가 넘는 섬 가운데 하나이고 특별한 아름다움은 없었다.

그러나 섬 여행이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목적보다는 여정에 더욱 의미를 두어야 후회 없는 여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섬 주민들은 도시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좋게 생각한다면 도시 사람들의 알뜰함이라고 이해하지만, 여행자들이 섬의 경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쓰레기 등등…. 다녀간 흔적만 남기고 떠나기 때문에 섬사람들의 얼굴 찌푸리게 하는 행동은 삼가야 할 것이다


황토로 지어진 전통 한옥
선반위에 정갈한 여유분의 이불이 있다

 

일박 일정의 여행이라면 신전리 한옥 펜션촌이 나름 정갈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조도에서 고급스럽고 쿠션 좋은 침대를 갖춘 숙소를 찾는다면 당일 여행이 제격이다.

아침 일찍 들어간다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여행이 아닌 관광 목적이어야 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 사진 속 모습만 만족할 수 있다면….

한옥 펜션촌은 약 20여호의 정갈하고 고풍스러운 한옥이 섬의 풍광과 어우러져 어쩜 한 폭 동양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에 섬의 특별한 하룻밤을 선물 받을 수 있는 그나마 깔끔한 펜션촌이다


 

또한, 밤이 되면 장대 하나만 있으면 하늘의 별도 딸 수 있을 만큼 쏟아질 것 같은 우주의 향연을 볼 수도 있고 마을 앞 방파제에서 돗자리 하나 깔아 놓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밀어를 속삭인다면 인생, 그만한 추억이 다시 없을 것 같겠다.

'섬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산에서 하루 놀기...  (0) 2020.06.10
생일도를 아시나요?  (0) 2020.06.03
사람들에게 물들다  (0) 2020.05.29
여행에 사랑을 더하다.  (0) 2020.05.26
완도군(보길도)  (0) 202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