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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여행

사람들에게 물들다

늘 혼자 만이여야 했던 길 위의 날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여행지에서의 쓸쓸함은 늘 차가운 고독뿐이었다. 
얼마를 더 낯선 곳을 배회해야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을까? 
마음을 다독이지 못하고 집보다 거리의 날들이 점점 더 쌓이는  어느 날, 
사람들에게 물듬은 그동안 여러 날 발악하듯 떠돌아다니며 떨쳐버리려 했던 아니 고독도 행복이라는 나만의 삶의 방식을 떨쳐버릴 수 있는 즐거운 여정이었다.
계절은 가을로 시나브로 물들어갈 때, 
잦아지는 여행에서 혼자만이 느끼기에는 너무도 아쉬운 아름다움을 친구들과 같이 느껴보고자 계획 했던 1박 2일의 여행, 
내심 너무 먼 곳이라 동참할 친구들이 있을까 했지만 한 명 한 명 동참 의사를 밝혀왔고 결국 많은 친구가 참여하게 되었을 때 내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았다.
주말 새벽에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도심 속의 만남 
초등학교소풍 전날 그때의 아이들 같은 설렘으로 속속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양손 가득 들고 메고 나타난 낯선 풍경에 난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여행은 늘 새로운 그것에 관한 탐사 수준이었기에 부수적인 민생고는 항상 신경 쓰고 다니지 않았는데 이것저것 먹거리 등등 많은 짐을 보고 처음 접하는 광경이라 약간 이상하기도 했다. 
마치 나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인 것 같은.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을 불식시키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여정이 시작되고 버스 안에서의 즐거움은 많은 친구가 왜 이토록 빈손으로 오지 않을 수 없는지 그때야 알 수 있었다. 
어쩜 사람의 가장 기본은 먹는 즐거움, 그리고 먹음으로써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쉬운 진리도 난 이제껏 터득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기에 나 또한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려 안간힘도 써보고 가끔 객기를 부려 나에게서 벗어나 노는 것에 동화되어 보려 나름 유치해져 보기도 했다. 
여로의 시간은 버스 안에서의 즐거움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리고 이른 아침 출발한 버스가 완도항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 무렵이 되었다. 
멀리 김해에서 달려온 여동생이 합류한 후 횟집에서의 성대한 점심은 내가 선심을 썼기에 이번 여행에서 내겐 가장 큰 행복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서울에서 천리를 훨씬 넘기는 길 끝의 포구에서 소안도행 객선에 올랐다. 
미끄러지듯 객선이 항구를 빠져나갈 즈음 혼자만의 여행에서 수없이 올랐던 객선의 난간 위에는 지난날 나의 고독 따위는 이미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찾아볼 수가 없었고
친구들과의 동행은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을 또 한 번 나에게 각인시키려는 듯 난 어느새 웃음 속에서 사람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객선이 섬에 다다르자 우리 일행은 섬의 작은 포구를 점령하고 저마다 중년의 틀을 벗어버리려는 듯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 또한 덩달아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일었다.
이들을 누가 중년이라 할 텐가? 아니 중년이면 어떻고 노년이면 어쩔 텐가?
즐거움만 오롯이 즐기면 될 것을…. 
여행의 목적이 틀에서 벗어나고자 함인데 이깟 가소로운 중년쯤이야 가벼이 벗어 버린들 탓할 사람 없지 않겠나 계절도 풍성한 가을이고 우리 인생 또한 아직은 가을이니까...
바닷가 마을 아담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하나둘 차에서 빠져나오는 짐들이 이삿짐을 방불케 했다.
바라보고 있자니 헛배가 불러다. 
바다에 젖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까 짐을 풀자마자 파도애 밀려가듯 방파제에 한 무리의 왁자지껄 이 파도 소리를 감쌌다. 
방파제 한쪽 가로등 위에 갈매기 한 쌍 생소한 광경에 화들짝 날갯짓으로 비상을 하고 낯선 이방인들을 경계라도 하는 듯 머리 위에 선회하며 눈치를 살핀다.
잠시 후 방파제에는 처음의 그것보다 더 요란한 왁자지껄 이 바다를 집어삼켰고 가냘픈 여인네들의 손에 쥐어진 낚싯대 끝에는 이보다 더욱 가냘픈 고등어란 놈들이 연신 허공을 향해 날아다닌다. 
듬성듬성 고등어의 어체가 썰리기도 전에 젓가락이 대기하고 이십여 마리의 물고기가 순식간에 바다에서 사람들의 뱃속으로 순간 이동을 하는 사이 하늘은 마냥 즐거운 사람들을 시기라도 하듯 바다를 어둠으로 덮어 버린다.
오는 시간부터 내내 사람들을 챙기고 먹이려고 애쓰는 옆집 살던 복순 이의 일사불란한 손놀림에 넓은 숙소가 휘어지는 상다리로 인해 비좁기 그지없기만 했다. 
여행에서의 만찬, 어느 칠성급 호텔의 성찬에서도 느낄 수 없는 상위의 비주얼 그리고 베란다에서 풍겨오는 숯불에 익혀지는 고기 냄새의 향연 내 인생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기억 속에 명장면으로 남아있을 듯함에 사람 속에서 저녁은 더욱 맛있게 익어만 갔다.
식사를 마치고 또다시 바닷가로 이끌리듯 숙소를 비우고 캄캄한 바다에서 무언가라도 잡아 회 맛을 보여 주려는 나의 애타는 심정을 물고기 놈들이 이미 간파를 한 것인지 놈들이 나의 위상을 세워주질 않았다. 
전날 불어온 태풍 탓이라 자신을 위로하며 몇 번이고 바다에 파문을 일으켜 보지만 아둔한 몇 놈들 제외하고는 나의 꼬임이 넘어와 주지를 않았다.
밤늦게까지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물고기 놈들로부터 나는 철저히 농락을 당했던 토요일의 밤은 어느새 자정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이런 걸 두고 입맛만 버렸다고 하는 건가? 
친구들의 가방 속 비닐봉지들은 물고기를 맞으려고 입을 벌리고 있는데 물고기 잡아 차곡차곡 채워서 손에 들려주려는 야심 찬 계획은  캄캄한 암흑의 바다로 날아가 버리는 헤프닝이 되고 말았다. 

섬의 아침, 어느새 준비했는지 뚝딱 차려진 해장 밥상으로 속을 달래고 어젯밤 못 본 물고기 입맛 대신 섬 구경의 눈맛으로 때우려는 나의 가이드로 섬 탐방에 나섰다
다행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날씨도 내 편이 되어주고 더욱 청명한 가을빛 하늘아래 코발트의 바다는 그 자태를 맘껏 낯선 이들에게 자랑하고 있었다. 
소안도 곳곳을 누비며 눈에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친구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는 멈출 줄 몰랐고 추억을 담아내느라 발품들이 비싸 보였다. 
소안도를 경험하고 다시 객선을 타고 보길도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고산 윤선도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는 세연정에서는 각자의 폰 카메라들은 강제노동을 당하듯 쉴 틈없이 찰칵찰칵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고 산 선생이 내려다보고 있다면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고 산 선생의 정취를 가슴이 아닌 카메라에 더 많이 담아 갈려고 하는 부산함에 여행이 아닌 관광을 온 것 같은 씁쓸함이 아쉬움이었다.

도시의 찌꺼기들을 섬 구석구석에 던져버리며 유유자적 거리다 보니 바다 위엔 한여름 부귀영화를 누리다 장렬히 산화한 태양이 초경을 시작했다.
텅 빈 바닷가 모래톱은 들락거리는 파도를 받아냄이 힘겨워 보인다 

섬을 나가야 할 시간
돌아가는 길은 섬에 들어올 때 배에 올랐던 완도가 아닌 해남 쪽으로 나가기로 하고 해남행 객선을 탔다.
보길도행 객선은 두 곳에서 출발한다
완도의 화홍포와 해남 땅끝마을 선착장인데 어느 곳이든 섬을 나갈 때는 다른 곳으로 나가면 좀 더 일찬 여행 코스를 잡을 수 있다.

나뭇잎파리 하나  쪽배 되어 떠다니는 땅끝 어촌마을
배에서 내리는 순간, 마음이 정화된다.
이곳에 와 본 사람은 안다.
몇백 년을 살았을까? 
해안 절벽의 노송은 통 채로 가을에게 전신을 내주었다
한때는 화려한 아침이 들려가기도 하고
또 한때는 고즈넉한 석양이 쉬어 가기도 했을 
해송,
오늘도 바다 위의 노송은 세월을 넘는다.




보길도에서 다리로 연결된 노화도 산양 진 포구에서 배를 타고 해남 땅끝마을로 나왔다.

여행의 일정을 끝내기가 아쉬웠을까?
일행들은 마지막 일정으로 해남 산속 조각으로 공원을 찾았다.
노을도 멀리 섬 산 뒤로 꼴딱 넘어갔는데 짙은 정적 속에 잠들어있던 조각들의 고요는 일행들로하여금 다시 일상을 맞았다. 
조각 공원의 작품들도 행복했을까?
자신의 몸뚱어리를 오롯이 일행들 에게 보시하며 마냥 즐거운 비명 속에 사람들과 뒤섞여 멋을 내고 있다. 

결국, 사람은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듯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기에 온 곳에서부터의 복귀는 마냥 아쉬움으로만 다가오고
어쩜 이 아쉬움을 달래려 보기라도 하는 듯 버스 안에서의 음주·가무는 마냥 아름다운 한 폭의 사람 사는 법이라는 작품을 보는듯하였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에서 돌아가는 길은 갈 때의 느리게만 생각했던 버스는 왜 그리도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또다시 핸들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는 혼자만의 여행이 아닌 것이 마냥 아쉬움으로 남는 어느 가을날 친구에게 빠진 한 폭 수채화 같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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