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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여행

생일도를 아시나요?


그 섬을 아시나요?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도 가방을 챙길 때면 언제나 설레고 밤잠을 이루기가 쉽지가 않다
까탈스러운 탓에 잠자리에 대한 염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섬 여행의 기대감도 한몫했으리라. 
생일도,
특이한 섬 이름을 구멍가게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여가 원래는 산유도였는디 해적들이 여그 와서 얼마나 못된 짓거리를 많이 하는지 살 수가 없었데니께 해서 모다 의논한 끝에 섬 이름을 바꿔보자 해서 바꾼기 생일도 지라~~~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로 생일도라 개명을 한 뒤 평온하고 큰 사고 없는 섬이 되 부렸소”

생일도행 배를 타려면 연륙교로 연결된 고금도와 약산도 두 개의 섬을 지나야 하는 데 가는 길 또한 배를 타지 않고도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은 섬 여행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섬을 들어가는 배는 약산도 당목항에서 출발하는데 약 40여 분 소요되고 자동차를 적재할 수 있는 큰 배가 운항한다.
또 완도읍 내 완도 여객선 터미널에서도 출항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요금 등등 모든 조건을 보더라도 당목항에서 배를 타는 게 더 유리하다.
완도군에 속해있는 생일도는 다른 섬과는 달리 비교적 원형 모양의 섬으로 자동차로 섬을 한 바퀴 돌아 보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작은 섬이다.
하지만 섬 곳곳의 바다 전망은 관광공사의 가보고 싶은 섬으로 선정될 만큼 그 모습이 사람에 비한다면 절색이라 표현할만한 섬인 곳이다
.

 

보잘것없는 객선은 얌전치 못한 날씨 탓에 너울의 노리갯감이 되어버렸고
사람들마저 객선의 자맥질에 부담을 느낄 무렵 해무 속에서 섬의 형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해무 속에서 보이던 섬 산의 꼭대기가 객선이 포구에 가까워질수록 섬 산을 비만으로 만들어 버렸고 해무는 끝내 사람의 땅을 정복하지 못하고 종종 자취를 감춰 버렸다.
덩치 큰 객선은 꽁무니에 시커먼 한숨을 토해내며 겨우 생일도에 정박했다.
객선에서는 마치 한 마리의 고래가 먹이를 소화하지 못하고 다 뱉어 버리듯 온갖 세상살이가 꾸역꾸역 쏟아져 나온다.
객선이 생일도 서성항에 들어서자 실성이라도 한 듯 입가에 낄낄거리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나왔다.
한 달에 세 번의 객선을 타는 까닭이다.
배가 생일도에 가까워지자 시야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게 있다.
객선 매표소 지붕에 올라가 있는 대형 케이크 모형,
다소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고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섬사람들의 단순한 아이디어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는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쩌면 도시의 예술 작품이라 불리는 거액의 조형물보다 단순한 섬사람들의 순박함을 입도 하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어 나름 흐뭇했다.
섬에 들어 온 도시인의 건방진 여유로움 이었을까?
구멍가게 선반 위, 언제 받아 놓았는지도 모를 과자 부스러기하고 라면 등등 이것저것 지역경제에 나름 도움이 되고자 알뜰히 챙겨 나왔다.
오랜만에 재고 처리라도 한 듯 생일도라는 이름의 변천사를 열변하셨던 노인장의 입이 귀에 걸리는 것을 뒤로하고 섬 탐방에 나섰다.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 본 생일도
산 정상에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

생일도에 가면 제일 먼저 백운산 정상을 오르는 게 여행 일정에 도움이 된다.
산을 차로 오를 수 있어 노약자도 쉽게 섬 산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용출리와 금곡리 두 곳에서 오를 수 있는데 금곡리에서 올라 용출리로 내려오면 용출리 몽돌 해변에서 잠시 쉬었다가 객선을 타는 포구로 가기에 편리하다.
생일도는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순환도로가 없으므로…….
그러나 산을 오르는 경사도가 심하고 굴곡진 곳이 많아 운전이 미숙한 사람은 피해야 한다.
산에 오르면 날씨의 여건에 따라 잘 알려진 거문도와 청산도 그리고 여타 고만고만한 다도해 섬들의 키재기라도 하듯 서로 뽐내고 있는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섬의 길을 따라 맨 끄트머리 용출리 방파제에서 마음 내려놓았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섬의 곶부리에서 해무를 뚫고 나올 태양의 안간힘을 기대해 본다
방파제에서 라면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뒤 아메리카노, 한 잔 내려 해무 속 수평선을 가늠해 본다.
이런 맛에 늘 섬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섬에 오면 라면 부스러기도 고급 식당의 비싼 음식 이상으로 진미가 되고 버너로 끓인 커피 또한 어느 바리스타의 작품보다 달콤한 커피 맛을 느낄 수 있기에,
파도를 노려보고 야단도 쳐 보았지만, 바다의 심술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파도를 원망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낚시 여행을 망칠 수 있음이 염려스러워서이다. 시간마저 나의 여행을 방해하는 듯 동쪽으로 그림자 길게 드리워질 즈음 해무는 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채 바다에 수장되었고 늦은 봄의 쌀쌀함에 한 겹 더 입었던 윗도리는 태양이 가져갔다.
손목 위의 째깍거림도 파도 소리를 뚫고 귀에 들어오듯 했고 태양마저 시간의 기세에 눌려 붉게 산화해간다.
더불어 나의 낚시 여행도 속절이 없어만 갔다.

이곳에서 완도로 나가는 객선이 있다

생일도 여행을 끝내고 섬을 나갈 때는 용출선착장에서 완도항으로 나가면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배 출항시간이 약산도행보다 뜨문뜨문 하지만 시간을 알아두고 생일도 여행을 한다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될 수 있다.
용출리에서 완도까지 가는 동안에는 단 한 가구만 사는 모항도라는 섬을 거치는데 배 위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다.
배 좌·우측으로 완도 신지도와 청산도를 끼고 가기 때문에 바다에서 바라보는 섬의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자동차의 오디오 볼륨을 맥시멈으로 해 놓고 음악으로 파도 소리에 대적했다.
낚시 여행은 끝내 희망 사항에 불과했고 그 허무함을 블루스 음을 뱉어내는 색소폰 선율에 묻어 버렸다.
바다의 교향곡에 파도가 율동을 하듯 위세를 더 떨친다.
아쉬움에 일박을 계획하고 낯익은 숙소의 아낙에게 전화했다.
섬에서의 홀로 맞는 밤은 고독 그 이상이다.
섬의 밤은 도시의 밤보다 더 하얗다.
머리 쪽의 바다에서 밤새 파도 소리가 마음을 할퀼 것이고 빼꼼히 열어놓은 창문을 비집고 들어 온 달빛은 추억 저 너머 어딘가에 나를 불러들여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끝내 마음을 다독이지 못하고 와글거리는 머릿속을 정리하고자 밤바다에 섰다.
이 파도 속에서도 살기 위한 본능으로 나의 사기에 걸려들 놈을 차출하기 위해서이다.
몇 번의 헛 챔질에 살이 통통히 오른 볼락이란 놈이 매달려 나왔다.
한 놈, 두 놈 탐욕인지 본능인지 놈들의 수가 늘어갈수록 위세 좋던 밤바다는 나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했다.
얼추 수십 마리의 놈들로 인해 어망이 좁음을 느꼈을 때 놈들을 고이 제가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고 자리에 누웠다. 머릿속은 여전히 와글와글했다.

초등 분교를 리모델링 한 금곡리 펜션

생일도에서 일박 일정의 여행이라면 금곡리 펜션과 해수욕장 앞에 리조트가 있다.
그런데 리조트는 시설은 좋으나 금곡리 펜션보다 비싸고 가성비도 떨어진다.
섬을 찾는 여행객의 숫자에 비해 큰 규모의 리조트라 오랫동안 비워둔 객실이 많아 불결하다.
반면에 금곡리 리조트는 폐교를 리모델링 하여 마을에서 운영하므로 무척 깔끔하고 복층실 등등 인원과 관계없이 편안하게 쉴 수 있다.


커튼 치는 걸 잊고 잠이 든 탓에 아침 햇볕으로부터 잠을 방해받았다.
시간이 자정을 지나고 몇 시간이 더 흘렀을 즈음에 겨우 잠들었음이 아침을 개운하지 못하게 했다.
다시 잠에 빠지려 커튼을 치고 누웠으나 정신은 이미 바다에 가 있는 뒤였다.
가볍게 고양이 세수를 하고 간단한 먹거리를 챙겨 갯바위를 향했다.
낚싯대를 펼쳤다.
물속, 무언의 생명체와 한판 벌이는 마당극,
나는 말뚝이도 되었다가 양반놈도 되었다가 혼자 소리 지르고, 혼자 탄식을 하고 그렇게 바다를 상대로 놀음판을 벌였다.
삶이라는 고해 속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는 순간이다.
물고기의 입질을 받았을 때 손에 전해져오는 간드러진 낚싯대의 떨림보다, 기생년의 뽀얀 속살 같은 횟감의 싱그러움보다 바다를 마주하며 서 있는 이 순간이 나를 더 흥분시킨다.
그리고 찰나에 보이는 감성돔이라는 놈의 반응에 오르가슴을 느끼듯 희열을 뱉어낸다.

객선이 정박하는 서성항에서 좌측길을 따라 자동차로 5분 정도 가다 보면 왼쪽에 철탑이 보인다.
그곳에서 길옆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갯바위가 나오는데 여행객들은 모르는 숨은 비경의 장소이다.
갯바위로 가는 길이 다소 험난하지만, 절벽으로 이루어진 바위 사이를 넘나드는 파도가 카메라를 들이대게 한다.
그리고 넓고 편안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곳도 많아 일행들과 둘러앉아 불판을 달궈도 좋음 직한 곳이다.
갈 때는 자신들의 흔적은 모두 되가져가는 미덕을 갖춘 여행자들은 더욱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이다.

숙소의 부엌이 부산스러워졌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손톱만 한 비늘이 허공을 날고 서슬퍼런 칼날은 인간의 탐욕 아래 어체를 난도질한다.
불 위의 냄비는 뼈가 녹아 들어가는 물고기를 대신해 아픈 비명을 지르고 몇몇 마을 사람들은 손에서 소주잔을 내려놓을 줄 몰랐다.

사람들의 웃음에 하늘이 시기했을까?
햇살은 여전한데 간간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밤인지 낮인지 헷갈리는 시간은 엉덩이를 더욱 무겁게 했지만 배 시간의 염려에 여우비 속에서 사람들과 손 인사를 건넸다. 선착장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때맞추어 시선도 자꾸만 자꾸만. 자동차 룸미러를 힐끗거린다.

생일도 여행에 아쉬움이 든다면 서성항 선착장에서 바라다보이는 금일도라는 섬으로 가서 또 다른 섬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다.
생일도에서 금일도로 운항하는 배편이 있고 차가 없는 사람은 일명 바다 택시라는 게 있어 개인 배로 금일도까지 데려다준다.
금일도는 생일도 보다 큰 섬으로 섬 곳곳이 전복 먹이가 되는 다시마 양식을 주 업으로 하는데 섬 곳곳이 다시마 양식장 건조장이 있어 다시마 냄새가 풍겨 제대로 된 어촌의 바다 내음을 경험할 수가 있다.
이 섬에는 관광 유람선이 운항하는 데 바다 위를 장식한 기암괴석의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금일도를 나오는 길은 다시 생일도의 출발지였던 약산 당목항으로 나오게 된다.


금일도 다시마 건조장
생일도 부속섬
물이 빠지면 각종 해산물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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