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섬 여행

군산에서 하루 놀기...

 

 

서울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주말을 맞아 가장 많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
아마 강릉이나 남쪽 동해 삼척 등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서울 양양 간 고속도로가 개통된 후에는 속초와 더 북쪽의 고성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주말이면 반복되는 극심한 도로 정체가 이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런데 자주 찾는 동해안보다 가끔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그저 평범함 속에서 새로운 볼거리를 접하는 것도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이다.


전라북도 군산,
서울을 기점으로 약 200여 킬로 정도로 동해안을 갈 때 걸리는 시간과 비슷하게 소요된다.
흔히 동해는 근육질의 남성을 상징하고 서해안은 단아한 여성을 나타낸다는 말들을 한다.
동해는 태평양 바다의 특성상 파도가 거칠고 섬들이 없어 다이나믹함을 느낄 수 있는 반면에 서해안은 같은 태평양에 속해있지만,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의 만으로 형성되어있고 많은 섬이 있어 육지로 들어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므로 비교적 얌전하고 순한 바다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바다는 역시 동해야!”

하는 말들을 많이 하는 데 동해가 좋다. 서해가 좋다를 말한다면 호불호가 엇갈리겠지만 서해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안다면 뻔한 동해로의 발길이 점차 서해로 돌려질 것이다.
군산은 일제 수탈의 역사 한 가운데 있는 곳이다.
일본은 군산과 호남평야에 농장들을 설립하여 생산된 쌀들을 전량 일본으로 보냈고 이러한 악행은 일제 강점기 동안 계속되었다.
또한, 중일 전쟁 때는 일본의 전쟁 물자를 공급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등 일제로부터 고통받은 산 역사의 흔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곳곳에 있다.
군산을 찾는다면 먹거리 눈요깃감만 찾아다닐 게 아니라 일제 잔재의 흔적을 찾아 역사 인식을 바로 잡아보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친일파로 분류 되어있는 채만식의 소설 탁류가 군산의 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군산은 영화와도 관련이 많은 곳이다.
황정민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를 비롯해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 여러 편의 영화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약 400여 킬로를 흘러온 금강은 군산에서 강으로의 생명을 다한다.
군산의 기수구역을 앞두고 행정구역은 서천군이지만 주민들 생활권이 군산인 서천 한산면 신성리 갈대밭이 있고 이곳에서 영화 JSA가 촬영됐다.
갈대밭을 지나 금강의 기수 지역인 금강 하굿둑 철새 도래지에서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많이 보아 온  환상적인 철새의 군무를 직접 볼 수 있다.

 

신성리 갈대 밭에서는 해마다 갈대 축제가 열려 한산모시와 모시떡을 선 보인다

 

군산 시내로 들어가면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근대화 거리가 있다.
예전 전 국민의 감성을 뒤흔들었던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이곳에서 촬영되었고 그 촬영지의 흔적은 지금도 군산을 찾는 여행자의 첫 번째  여행 코스에 자리 잡고 있다.
영화 속의 초원 사진관과 주차위반 스티커를 발부하러 다니던 여주인공의 국민 경차가 보존되어 여행객들의 사진 촬영 명소가 되었고 촬영지 근처는 일본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지역답게 적산가옥 등 근대 일본식 건축물이 즐비한데 한때 오욕으로 점철되었던 시대의 부산물이 관광 인프라로 성장해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초원 사진관 가까운 곳에는 영화 타짜 촬영지도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쌀을 수탈해 가던 농장주기 살던 보존된 일본풍 가옥이 영화 속 청 경장 역의 백윤식이 사는 집으로 나왔던 곳인데 관람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타짜에서 청경장 집으로 나왔던 일본식 가옥
근대화 거리에 일본식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시장기를 느낀다면 근대화 거리에서 멀지 않은 그곳에 있는 100년 전통을 이어 왔다는 중국요리 집이 있는데 이 집에서 황정민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와 타짜가 촬영되었다.
평범한 중국요리 집이 아닌 규모가 대단하고 실내가 이 층으로 된 구조가 홍콩 영화에서 보이는 요릿집을 보는듯해 색다른 경험된다.
식사하려면 이곳도 유명세로 인해 줄을 서야 하지만 기다리면서까지 맛을  볼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다.
서울 등 대도시의 맛으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 얻어지는 문전성시라기보다는 유명한 곳 탐방이라는 여행자의 의무 같은 것이라는 게 맛에서 느껴진다.
홍콩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느낌이랄까?
중국 음식점이 문화재로 등록되었다는 그 독특함에는 즐거운 식사가 될듯하다.

 

이 중국 집에서 여러 편의 영화가 촬영 되었다

 

군산에 또 다른 명소는  그 유명한 경암 철길 마을이 있다.
원래 이곳은 바다였는데 일본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매립해 육지로 만들고 경암마을 근처에 제지 공장을 세워 제지를 실어 나르기 위해 철길을 놓았다.
제지 공장에서 군산 역까지 2.8킬로 정도 되는데  예전 기차가 지나다닐 때는 판잣집으로 지은 집이 무너질까 봐 주민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있었다고 한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사이를 거대한 기차가 어떻게 지나갔을까 생각하니 기차가 지날 때마다 고통에 시달렸을 주민들의 애환에 고개가 숙어진다.
그런데 이곳도 어김없이 자본주의 상술이 여행의 진미를 잃게 한다.
옛날 교복 대여와 불량식품으로 대두되던 어릴 적 각종 먹거리를 파는 추억 장사꾼이 난립하는데 흥에 겨워 추억 몇 개 사보더라도 향수를 느끼면서 상념에 젖어 볼 수 있는 장소는 아닌 듯하다.
생각하는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자는 결국 철길을 다 경험해 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곳이다.
군산에서는 전국 3대 빵집에 든다는 이성당 빵집 또한 번호표를  뽑고  오랜 시간 대기해야 하는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새만금을 삐 놓고는 군산을 말하기 어렵다.
19년이란 긴 공사 기간을 거쳐 2010년에 완공한 새만금 방조제는 세계 최장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으며 바다를 매립한 넓이가 서울시의 절반 면적이라 한다.
서해안의 육지 지도가 바뀔 만큼의 거대한 방조제를 드라이브하는 재미는 동해의 시원함을 맛보는 것 못지않다.
한 번쯤 과속을 해보는 객기도 부려 보고 싶은 끝이 보이지 않는 33킬로의 도로는 시원함 못지않은 짜릿함까지 준다.
방조제를 달리다 보면 선녀가 산다는 선유도를 비롯해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고군산군도의 5개 섬이 있다.
그중 선유낙조로 유명하고 십리 해수욕장 등 곳곳에 비경이 산재한 선유도, 그리고  무녀도, 신시도, 비응도, 장자도 모두 해안 산책로가 잘 놓여있어 바닷가를  거닐며 마음 쉴 수 있는 곳이 많다. 


 

선유도 해수역장 앞의 바위산

 


특히 자동차길 끝에 있는 장자도는 기암괴석의 사자바위, 할미바위와 기타 볼거리가 많고 맨 마지막 섬 대장도의 산 정상에 올라 고군산군도를 바라보는 비경이 경이롭다. 
새만금 방조제가 건설되고 난 후 서해의 비경으로 꼽히는 이들 섬이 한결 접근성이 뛰어나 주말이면 사람들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
그런데 예전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던 섬들이 이제  여행객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여기저기 오염되어가고 각종 먹거리 상점등의 난립으로 조용하고 사색이 있는 여행을 주제로 잡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든다.
이곳도 다른 유명 관광지처럼  눈만이 호강하고 마음은 한쪽에서 씁쓸함으로 자리를 잡는다.

 

장자도 산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 본 고군산군도

 


날로 변화하는 문명아래 보존하고 아껴둬야 할 곳곳이 관광 상품화되고 참 여행의 문화가 실종된 느낌 어디를 가나 지우기 어려운 현실이다.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단지 잘 먹고 시간 나면 놀러 다니는 게 아니라
여행 하나에도 사진으로만 남기기보다는 자신의 자아의식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보다 나은 인간으로서의 의식적인 변화를 찾는 시간이 된다면 그게 더욱 삶의 질을 높이는 가치가 될 것이다.

군산, 

도시 속에 근대화의 역사를 볼 수 있고 아름다운 바다와 섬과섬이 아기자기한 멋을 품고 있는 곳
너르고 끝없이 펼쳐진 동해의  우람함에 다소 식상함을 느꼈다면 군산으로의 여행도 집으로 가는 길이 아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섬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일도를 아시나요?  (0) 2020.06.03
그 섬을 아시나요?  (0) 2020.06.01
사람들에게 물들다  (0) 2020.05.29
여행에 사랑을 더하다.  (0) 2020.05.26
완도군(보길도)  (0) 202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