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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문학

화천에서 하루 놀기

오래전 인기 여배우가 산소 같은 여자라는 화장품 광고 카피가 있었다.
화천에 와서 문득 그 오래된 광고가 생각이 난 건 왜일까?
만약 지금 화천을 광고하라고 한다면 그때 그 광고 문구를 도용해 산소 같은 화천이라 해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을 것 같다.

산소 같은 화천,
강원도 화천 하면 해마다 겨울에 열리는 산천어 축제를 떠 올릴 것이다.
그만큼 화천 산천어 축제는 세계적으로도 꽤 명성을 얻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겨울 축제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화천의 산천어 축제가 대성공을 거두자 이를 벤치마킹하여 전국적으로 겨울철만 되면 물고기 축제가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기 시작했으니 화천 산천어 축제의 유명세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겨울 산천어 축제의 화천만 알고 있을 뿐 그 외 숨은 매력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강원도의 중 북부 남한 최북단에 있는 화천은 우리나라 군사지역의 요충지로 군민이 2만4천여 명 정도인데 그보다 군부대 장병들이 더 많은 곳이다.
이렇듯 얼핏 생각해보면 강원도 오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서울에서 2시간 안에 갈 수 있는 하루 여행의 최적지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별히 경관이 뛰어나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하는 곳은 적지만 소박하게 사부작거리다 보면 한결 도시의 혼탁함을 씻어 낼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라 아니 할 수 없는 곳이며
산소 같은 화천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는 표현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낄 것이다.

파로호 전경
멀리 보이는 게 화천댐이다
화천 입구의 화천 대교


화천 입구에 들어서면 드넓은 북한강과 마주하게 된다.
화천읍 근처에 있는 파로호에서 흘러나오는 강이 북한강이 시작되는 곳인데
물의 고장이라는 명성답게 강이 먼저 여행객들을 맞는다.
파로호라는 이름은 6·25전쟁 때 중공군 즉 팔로군 수만 명이 수장된 곳이라 하여 이승만이 이름 붙였다.
양구군과 화천군 두 개의 군에 걸쳐 있고 광복 후 이북 땅 이었다가 전쟁 후에 남한 땅이 되었으며 파로호 댐을 넘어 흐르는 북한강의 시작점부터 산소 같은 화천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산소길이 있다.




산소길 전경
북한강변 산소길


강물 위와 산길에 데크를 놓아 트레킹하기 좋은 약 40여 킬로의 길로 화천군에서는 산소 100리 길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굳이 이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산소길이라 실감 날 만한 곳이다.
산소길을 걸어보면 “도시의 공기와 전혀 다른 맛이 나는 공기”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호흡이 깊어진다.
전문적인 트레킹 여행이 아니라면 전 구간을 걷기보다 댐을 조금 지나면 나오는 강 위로 놓인 수상 데크길 정도만 걸어도 도시의 찌든 때를 씻어 버린듯한 상쾌함을 느낄 것이다.

산소길을 유유자적 거리다 읍내로 들어오면 너른 강 가운데 잘 정돈된 붕어섬이라는 곳을 볼 수 있다.
겨울철 산천어 축제 못지않게 여름에는 붕어섬 물 축제가 열리는데 이 또한 축제를 찾아 더위를 식히려고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여름이면 한 번쯤 참여해봐도 좋을듯한 화천의 대표적 3대 축제이다.
3대 축제 중 또 하나는 읍내에서 30분가량 이동하는 거리의 사내면에서 열리는 토마토 축제가 있으며 토마토 수영장에서 온몸에 토마토즙을 뒤집어쓰는 경험하기 힘든 귀한 시간도 가져보면 좋을듯하다.
산소길을 거닐어 보고 방향을 북쪽으로 옮기다 보면 아기자기한 강을 가로지르는 까만 색의 다리를 볼 수 있는 데 화천 꺼먹 다리라는 곳이다.


꺼먹다리
꺼먹다리 아래의 북한강


꺼먹 다리는 1945년경 준공된 우리나라 철근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다리로서 특이하게 다리 상판은 나무로 되어있는데 이는 나무가 부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은 콜타르를 입혀서 꺼먹 다리라 하며 근대 문화유산 등록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다리를 지나 조금만 가면 웅장한 폭포가 눈에 띄는데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평화의 댐으로 드라이브를 해도 좋을 것이다.

가는 도중 이른바 강원도 길의 꼬불꼬불한 도로를 달리는 재미와 함께 차 옆을 스쳐 지나가는 자작나무 숲과 깊고 푸른 산의 자태는 한결 마음에 있는 번뇌가 덜어질 것이다.
한 시간 정도 가면 전 국민이 사기의 대상이 되었던 평화의 댐이 있다.
그런데 천혜의 자연경관을 해치는 흉물스러운 댐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는 순간 누구나 탄식과 안타까움의 신음이 흘러나올 것이다.
아픈 오욕의 시간이 이곳 순박하기만 한 땅덩어리 오지의 깊은 골짜기에도 스며 있다고 생각하게 할 것이기에 여행자가 젊은 부모라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의 계기가 되는 장소로 여기고 들뜬 여행의 감정을 한결 누그러뜨려 봄직도 여행에서 얻은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평화의 댐(사진:화천군)

시간이 허락된다면 최전선 칠성부대의 휴전선 칠성 전망대에 올라 북한 병사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나름 새로운 경험이 된다.
전망대를 오르려면 상서면 칠성부대 안내소에서 사전 신분 등록하고 군 지휘 차량의 인솔하에 30여 분 최전방 고지를 올라야 하는 데 그 가파르기가 운전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최전방 DMZ초소 이곳에서 북한 병사들을 볼 수있다


또한, 화천에는 우리나라 문학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외수 선생의 문화원이 있다.
화천군에서 감성 마을이라 이름 붙이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실 수 있게 문화 공간을 지어서 선생을 모셔 왔다.
문화원에는 선생의 작품들과 함께 선생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 들은 가 볼 만한 곳이다.
운이 좋아 선생이 계신다면 같이 사진도 찍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문화원 입구 출렁다리


화천 여행을 마치고 서울 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조금 색다른 코스로 간다면 다시 한번 전혀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민통선 군사지역을 관통해서 가는 방법이다.
민통선은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는 군사지역으로 이외수 선생의 문화원에서 멀지 않는 철원 육단리에서 동송리로 가는 직선 길이 있어서 군에서 개방을 하고 있다.
입구 초소에서 신분 확인을 하고 출입을 시키는데 출구까지 가는 동안에는 차를 정차하면 안 되고 주어진통과 시간 안에 나가야 한다.
조금은 싱거운 느낌에 민통선 지역에 들어왔다는 색다른 경험 이외는 할 수 없지만 이동하는 도중 주위를 둘러본다면 분명하게 또 다른 느낌을 받는 여행이 될 것이다.

산소 같은 화천,

공장 하나 없고 어디를 가도 물로 둘러싸인 화천은 그야말로 산소 같다는 말이 잘 어울린다. 
여행 후 여행기를 쓴다면 자신도 모르게 집어넣게 되는 표현이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볼거리 많은 관광지보다 가끔은 사부작사부작하면서 마음을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을 더욱 활기차게 할 곳이 바로 화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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