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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문학

인연



공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면 항상 보이는 문구가 있다.

늘 별 의미 없이 지나쳤는데 오늘 문득 이 문구가 가슴에 와 닿아 바지춤을 여의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보았다.
"한 발짝만 더 다가서세요"
이 말이 화장실에 붙어 있기에는 참으로 안타까움을 느끼며 사람 간의 인연에 대비시켜 보았다.

피천득 님의 수필에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인 줄 알고 그것을 살려 나간다 ]

라고 하셨다그리고 인연을 얘기할 때 흔히들 "옷깃만 스쳐도~~~~라고 하는데 이 말의 어원만 놓고 본다면 인연은 흔하게 이루어지는 것같이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옷깃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길을 가다 타인과 쓱 옷자락만 스쳐 도의 그 옷깃으로 잘 못 알고 있는데 우리말에서 옷깃에 해당하는 옷의 부분은 윗도리 목 카라 안쪽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과 이 옷깃이 스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기에 옷깃을 빌려 속담에서 말하는 인연은 결코 흔한 게 아니고 가벼운 것도 아니다.

불교 용어에 억겁이란 말이 있다.

또는 억겁의 인연이라 하기도 한다.

그럼 억겁은 얼마만큼의 시간을 나타내는지 알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1 억겁이란? 천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수가 집 한 채만한 바위를 뚫는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이처럼 억겁이란 현실과도 동떨어져 마치 우주 안에서는 미증유(未曾有) 같은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까 인연을 억겁에 비유했으니 너와 내가 만날 확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데 그럼에도 만났으니 그야말로 기적이라 해고 결코 과언이 아닌 것이다.

삶의 궤적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산다.가슴 포근한 인연, 마음 시리게 애달픈 인연, 때로는 눈물 나게 서러운 인연 그리고 어떤 때는 정말 기억하기 싫은 악연을 맺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피천득 님의 수필집 말씀처럼 살아가면서 행 불행을 결정짓는 요소는 기적 같은 인연을 어떻게 이어가는가 하는 데 좌우된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입이 아니라 ‘귀’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중에서 ~)

좋을 땐 간도 쓸개도 빼주면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시한부 인연에 길들어 사는 사람들 ,
그런 삶은 우리 인생을 너무 가볍게 굴리는 짓이라 생각한다.억지로 인연이 아닌 인연을 이어나가려고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큰 불상사로 인해 고초를 겪기 때문인 것이다.

 

세상일은 늘 갑자기 생기게 마련이다.사노라면 처음부터 계획되고 예정된 일도 있지만 때로는 누군가로부터 갑자기 기별을 받고 어떤 때는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부르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사연이 생기고,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역사가 이루어진다.
만남과 헤어짐도 좋은 인연이나 껄끄러운 악연도 크게 다른 바 없다.
여름날에 별안간 하늘을 덮은 먹구름이 비를 뿌리듯 우리의 인생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일들은 늘 갑자기의 연속이다.
삶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연극은 작은 시간으로 짜 맞추어진 조합이며 준비된 각본 사이에 시시때때로 끼워 넣는 즉흥성의 현재 진행형이다.

길을 걷는다고 말하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앞으로 난 길이 없다.
사람들은 단지 자신이 걸어온 흔적을 돌아보면서 그것을 길이라 부른다.
어느 날 갑자기 곁에 있던 누군가 보이지 않더라도 이 또한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 삶은 늘 갑자기의 연속이니까. 우리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이 끝없이 순환하는 우울한 구조로 되어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지 않았듯 이별과 만남의 시간도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다가오는 것이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 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맺어야 한다 "
일찍이 법정께서 말씀하셨다.

또 "모사재인 성사재천 (謀事在人 成事在天 )이라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성사 여부는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사람 간의 인연도 사람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 맺어 준 그것으로 생각하고 인연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면 상대방과의 불협화음 없이 오랜 세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 걸음만 다가가 서세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하는 데 그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주는 게 상대방에게 한 걸음만 더 다가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한 걸음 더 다가가서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할 때 적당한 관계가 유지되고 진정 아름다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아울러 배려해 주고 동감해 줄 때 인연은 비로소 완성되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영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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