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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문학

소나무에게 쓴 편지





깊은 잠에 빠진 당신의 손을 잡았습니다.
삭발한 민머리에 초췌한 모습이지만 이별을 온화하게 맞아들이는 당신의 얼굴을 보며 내 가슴은 칼로 난도질을 당하는 듯했습니다.
내가 잡은 손에서 나의 체온이 전달되는지 고개를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당신,
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려 왔습니다.
내가 말하는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손끝에 온 힘을 다해 당신의 뜻을 전하려는 작은 떨림에 나는 온몸이 감전되는 듯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결국, 삶의 끝자락을 잡고 두 딸아이와 나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가만히 눈을 감은 당신을 보았을 땐 차라리 내가 당신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감은 당신눈에 이슬이 맺히고 내 눈물이 당신 볼을 타고 내릴 때 당신의 육신은 상처만 남긴 채 우리에게 이별을 고했습니다.
이게 정녕 현실 이란 말인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은 현실이 꿈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통곡해 지만 부질없는 외침에 눈물만이 콧등을 적시었습니다.
임종하기 좋은 계절에 떠났다는 타인의 위로에 애써 슬픔을 위장했지만 슬픔을 감추는 것조차 죄인인 듯 해 심장이 녹아내리는 고통이었습니다.
떼어낼 수 없는 악마 같은 종양에 붙들려 허접스러운 운명을 맞이한 당신,
화장터로 가는 길목의 나무들도 슬픔을 아는 법인지 잎을 떨구는 소리조차 내뱉지 못했습니다.
세속의 질펀함처럼 저승길도 화장터의 순서를 기다려야 했고 당신이 화마에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난 화장터 벤치 하나를 다 적시고 말았습니다. 더 쏟아낼 눈물도 없어질 즈음 내 얼굴을 스치는 바람 한점 스쳐 지나가는데 미련 때문에 저승길을 떠나지 못하는 당신의 넋두리 같아 또 한 번 통한의 눈물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조그만 항아리 안에서 하얀 슬픔으로 내 손에 쥐어졌을 때 비로소 타인이 되어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다는 현실이 가슴에 비수 꽂는 아픔을 느꼈고
끝까지 지켜주고 살려주겠다고 다짐해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이 공허함으로 귓전에 울려나 또한 한 줌의 뼛가루로 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젠 세속에서 당신 죽음의 대가로 모든 것이 채워지고 윤택해진다 해도 가슴 가득 빈 것 같은 허전함이 괴롭힐 땐, 슬픔이 찾아올 땐 감당할 길 없을 것 같아 살아감이 아득하기만 할 것 같습니다.

집안 구석구석 당신의 흔적에 죽어도 살아있을 것 같은데
난 오늘 당신의 부재를 세상에 알려야 했습니다
그리 또 한 번 동사무소 벤치에서 통한의 눈물을 쏟아 내고야 말았습니다.
25년 동안 내 밑에서 나를 받쳐주던 당신의 이름은 온데간데없고 등본 속 한 칸 더 늘어난 이하 여백의 빈 공간처럼 내 가슴의 허전함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살아 있는 동안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당신의 부재가 늘 통증으로 올 듯 해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더 쏟아낼지 두려움이 앞서 다가옵니다.
새로움이 돋아나는 봄이 오면 남은 추억들이 창문 너머로 버려질까 아쉬움에 방을 나서기가 무섭습니다.
당신이 그랬지요! 늙어 쓸모없어질 때 고향 골짜기 한편에
하얀 집 짓고 예쁘게 늙으며 저 세상 같이 가자고,그렇게 약속했거늘 야속하게도 먼저 시골의 안식처를 찾은 당신
정원에는 당신이 심어 놓은 소나무 한그루 과거 속에서 몹시 흔들리는지 가냘픈 떨림을 하고 있습니다.
창문 열고 가만히 소나무를 바라보지만 가슴 욱신거리는 통증이 또다시 머릿속을 하얗게 점령합니다.
당신이 병마의 마지막 고통에서 벗어나 이승을 떠날 때 당신의 영혼은 눈물로 당신의 나무에 추억을 걸어 두었나 봅니다.
나는 그래서 당신이 옆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만 열면 당신은 언제나 푸른 모습으로 여기 서 있을 것이고 하루하루 그렇게 당신의 추억들을 지켜 줄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육신은 한 줌 부스러기 되어 보잘것없으나 당신의 영혼은 이 소나무에 영원히 깃들어 다른 모습으로 우리 가족처럼 함께 살 것 믿기 때문입니다.
당신,
저승에서라도 지켜주지 못했던 나에 대한 원망 접어두고 나와 우리 두 아이들 든든히 지켜주길 바랍니다.
다시 태어나도 나의 아내로 살고 싶다던 당신의 말
나 또한 가슴속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부디 가는 길 슬퍼 말고 꽃구름 타고 일곱 빛 무지개 길 따라 행복한 여행길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 여행길 쓸쓸하지 않게 우리 가족들 생각하면서,
당신이 있어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남은 세월 또한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정원 한가운데 늘 당신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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