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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문학

금연

 

 

 

 

동네 골목 어귀,
까까머리 어린놈들 몇 쪼그리고 앉아 연신 하얀 연기를 뿜어댄다.
뒤이어 지나던 백발의 할아버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의 비행을 보시고는 호통을 치신다.
깜짝 놀라 혼비백산하며 줄행랑을 친 철없는 녀석들, 위급상황을 잘 모면했다고 서로가 낄낄대며 안도하던 것도 잠시...

나는 옆구리가 따뜻해져 옴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친구 녀석의 놀란 고함소리에 재빨리 나일론 점퍼를 벗에 바닥에 발로 짓이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들고 있던 담배를 땅바닥에 버리는 것을 잊고 점퍼 주머니에 넣고 뜀박질을 한 것이었다.
두 번의 위급상황을 잘 모면했다는 안도감은 잠시,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의 신들린 부지깽이 춤사위에 눈앞이 캄캄해져 옴을 느끼고는 큰 걱정에 친구들의 낄낄 거리는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어머니의 강압적 교육방식에 대항 해 나는 어떻게 하면 친구들처럼 오롯이 청소년기를 추억으로 가득 물들일까 생각하며 나름 탈선을 위한 탈선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끽연 입문은 시작되었고,
그 뒤 그날의 담배 맛을 기억하고 있는 나의페는 야금야금 담배가게로 나를 이끌며 용돈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학교 화장실에서 망보던 녀석이 오줌 마렵다며 제 본분을 망각한 탓에 군복을 입고 손에 몽둥이를 든 교련 선생에게 발각돼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아픔도 느껴보았고, 또 어느 때는 내방 책상 서랍을 빼고 그 밑에 숨겨놓은 담배를 찾아낸 어머니의 본능적인 자식사랑 탓에 좀 컸다고 부지깽이가 아닌 용돈 감축으로 한동안 친구들에게 빌붙어 지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철딱서니 없던 어린 시절 담배는 내게 백해무익한 물건이었지만 난 이 조그만 종이 곽을 멀리하질 못했다.
성장하면서 연애를 할 무렵 여자 친구의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있다는 말에 더더욱 담배를 끼고 살았는데 그 무렵에는 담배는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은 착각을 하기에 충분한 사회 여건이 형성돠었다.
대학을 들어가고 앰 티나 미팅에서 담배는 남자의 멋으로 여기는 시기였고 오히려 담배 못 피우는 녀석들은 좀팽이쯤으로 업신여김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고뇌하는 청춘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아님 담배를 피우며 폼나게 고뇌하는 척했던 것일까
가진 것 이라고는 불알 두 쪽과 젊음이라는 패기 하나로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 체제의 폭압에 맞서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정의감과 사회를 바꿔야 된다는 얼토당토 한 군중심리에 휩싸여 데모의 대열에도 끼어보고, 경찰서도 끌려가 며칠 고생도 해 보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 지나 알고 무모한 행동을 했는지 참으로 나 자신이 당돌하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 담배는 혈기 넘치는 청춘들에게는 필수요소적인 기호품이었다.
학교 앞 음악다방은 으레 담배 연기 자욱해야 분위기 좋고 음악 좋은 집이라는 대접을 받았고 학교 서클룸 또한 담배꽁초가 음료수 깡통에 차고 넘쳐야 왕성한 서클로 대변 돠는 격랑의 시기였다.
사회 곳곳에 금연이라는 글씨는 무슨 말인지 알 턱이 없던 시절, 나 자신도 내 주머니에서 담배는 선택이 아닌 필수의 존재로 굳건히 자리 잡았고, 더불어 내 뱃속도 담배연기의 안락한 안식처가 되어갔다.

직장을 들어가고 식사 후 일 연초라는 우스꽝스러운 명언 아래 한술 더 떠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난 하루에 소비하는 담배 개수를 한 갑 더 개봉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어쩌다 돈이 떨어져 담배를 살 수 없을 때는 버스정거장 토큰 가게에서 파는 낱개 피 담배라도 사서 피워야 그날 하루를 온전히 마감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아침에 피울 담배가 없음을 걱정하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직장에서 하는 일의 특성상 늘 연구과제에 시달릴 때면 잠시나마 담배가 위로를 해주었고 차츰차츰 직장에서도 나의 위치가 굳건히 되어갈 무렵 나는 보무도당당하게 하루 두 갑이라는 골초의 대열에 합류하는 영광(?)을얻었다.
그렇게 담배가 또 하나의 자연스러운 나의 솔메이트가 되어 있던 어느 날,

퇴근 후 작은 아이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한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을 하고 현관을 들어설 때 나를 반기는 아이를 안는 순간 아이가 도망을 가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난 갑자기 당한 일에 어안이 벙벙해지고...
아이는 울면서 아빠 담배 피우면 빨리 죽는다고 유치원 선생님이 그랬다며 나가 곧 죽을것처럼 서럽게 우는 모습에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아이를 달래 주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나 하나의 작은 행동 때문에 아이가 상처 받고 또한 내가 가장인데 너무 식구들 생각을 하지 않았구나 하고...
그리고 그날 밤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글을 크게 써서
거실벽 정면에 붙이고 금연 결심에 들어갔다.

먼저 직장 동료 선 후배들에게 금연에 돌입했으니 도움을 요청하였고 약국에서 은단 또는 껌 몇 통 사다가 책상 서랍을 채웠다.
한동안은 후유증에 몸살을 앓고 심한 우울증도 겪었다.
그렇게 금연에 돌입한 지 한 달 두 달 서서히 담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가고 한 육 개월쯤 가니 동료들의 담배 연기가 메스껍고 거북스럽게 다가왔다.
금연을 성공한 것이다.
옛말에 금연한 놈에게는 지독해서 딸도 안 준다는 속설도 있는데 난 소중한 내 아이를 위해 금연을 결심했고 결국 성공하였다.
지금은 금연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정부의 금연정책이 전무 한때라 보건소라던지 사회 각층에서 금연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하여 담배 끊기가 참 어렵던 시절이었다.
또한 우리 세대 누구나 격은 것처럼 힘든 시절이었고 그 어려움을 담배로 많이 위안받던 시기였다.
어림잡아 짚어보니 나의 금연은 그렇게 17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다 어느 해 봄, 나에게 찾아온 청천벽력과 같은 불행은 나를 또다시 담배의 유혹에 빠지게 했다.
한순간 나에게 골초라고 따라붙은 별명이 아내에게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어 자책도 해 보았다.
유치원 시절 나에게 했던 아이의 울부짖는 말 한마디가 결국 내가 아닌 아내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망상도 하게 되었고...
그리고 암울하고 암담한 처치에 나의 손엔 어느새 종종 담배가 들려 있다.
하루에 두 개비 그리고 세 개피 서서히 잊혔던 나의 폐가 옛 기억을 찾아 담배를 추억할 때 나의 차에는 또다시 담배가 놓여있게 되었다.
지금은 허허로움에 가끔 담배를 피우면 많이 위안이 된다
아직은 하루에 서너 개 피 정도의 소비를 하지만 아무리 환경이 나를 지배한다 해도 다시는 골초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그리고 어느 순간 또다시 과감하게 주머니에, 차 안에 담배냄새를 없애주는 방향제를 과감하게 버릴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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