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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문학

먹방

얼마 전에 황교안씨가 80년대 대학 시절,학교 구내식당에서 50원짜리 라면 국물을 사 먹으며 공부했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던 일이 있었다.
80년대 이후 대학을 다녔던 세대를 중심으로 거짓 이라며 황 대표를 비판했고 그 이전 세대들은 황 대표가 정말로 라면 국물을 사 먹을 정도로 가난했을까 하며 의문을 품었었다.
그런데 당시 여러 대학의 구내식당에서는 도시락 국물용으로 라면 국물만 따로 팔았던 게 사실이었다.
황 대표가 정말 라면 국물을 사 먹을 정도로 가난했을까? 하는 것은 관심 없지만, 그때 그 발언을 듣고 한동안 지난날 나의 힘들었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해 다소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가격이 50원이었는지는 강산이 서너 번은 바뀐 세월의 흐름 속에 되찾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아마 100원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해 볼 뿐이다.
정상적으로 나오는 밥값에 비해, 라면 국물에 공깃밥 하나 사서 밥을 말아 먹으면 반값으로 점심이 해결되기에 당시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인기 메뉴였다.

오후 6시
무료함에 소파에 벌러덩 누워 티브이를 켰다.
지상파 공영 방송부터 종편까지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내가 볼만한 프로그램이 나오지를 앉아 뉴스 몇 장면 보다가 다시 꺼 버렸다.
그런데 소파에서 일어 설려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티브이를 다시 틀고 살펴보았더니 모든 방송이 먹는 프로그램,소위 말하는 먹방을 하는 것에 적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옛날 나의 대학 시절이 생각나 빙그레 입가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세월이 참 많이 흐른 것을 실감 하면서,

21세기의 대한민국, 우리는 지금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의식주 해결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던 서글픈 추억은 이제 외할머니 무릎을 베고 들었던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이야기처럼 되어버렸고 신세대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가는 그야말로 쉰 세대 꼰대의 잔소리 쭘으로 들리기 딱 좋은 요즘이다.
길을 가다 어느 가게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본다.
궁금하여 무엇인가 살펴보면 어김없이 맛집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식당이란 걸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대체로 젊은 사람들 일색이다.
그러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들 이렇게 음식에 열광할까?
물론 음식뿐 아이라 자신들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지만 유독 먹는 문화가 젊은 사람들속으로 깊이 파고들고있다. 

어느 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은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푼다는….
그러면 요즘 시대를 사는 젊은 사람들 또한 이런 범주에 넣고 보아야 하는 걸까?
나 자신의 대학 시절과 젊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비교해보았다.
난 80년대 초 학력고사 세대라 대학 이란 게 그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닌, 한 사람이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서 낭만과 젊음을 만끽하며 인생의 올바른 길잡이 역할이 되어주는 한 과정쯤으로 생각했다.
그러기에 암울했던 국가의 정체성에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념 논리를 앞세우며 거리에서 보도블록을 깰 수 있었고 자신들의 안위는 생각 않고 공권력에 대항하는 무모함도 저지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국가의 기반이 되는 민중의 자유화에 나 또한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오늘날 이 시대 젊은 사람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에 안타까움이 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젊은 사람들의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고뇌에 적지 않은 측은지심이 느껴진다.

80년대 이후 급변하게 발전하는 사회 구성원 속에서 오로지 뛰어난 인재들만이 메이저의 손짓을 받을 수 있었고 지극히 평범한 대다수 그 외 젊은이들은 그저 그런 삶에 고단하기만 한 삶을 선택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아귀다툼 같은 치열한 사회에서 장래에 대한 핑크빛 삶을 꿈 꾸기에는 이상보다 높아만 가는 현실에서 늘 뒤처지며 시나브로 미래를 포기하는 이른바 삼포 세대가 탄생하게 되었다.
결국, 미래보다는 현실에 안주하여 지금 이 순간만 잘 먹고 잘사는 현실주의자로 변모하여 놀고먹는 것에 젊음을 불사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옛날 우리 세대가 낭만과 용기와 미래에 대한 고뇌로 온 젊음을 보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제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좀 더 높여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한 시절을 풍미했던 기성세대들은 이제 세월의 뒤안길로 지그시 물러나 먼발치에서 요즘 젊은 사람들의 길을 터 주어야 할 것이며 이들 세대의 살아가는 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포옹할 줄 아는 그야말로 어른의 몫을 다 해야 할 것이다.

티브이를 보며 우리가 어느덧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구나! 실감 할 수 있었다.
거리의 높은 빌딩과 자동차와 멋있게 차려입고 다니는 사람들,

이런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인해 국가의 삶의 질을 어림짐작하며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는데 오늘 문득 여러 방송에서 그 모습도 먹음직 스러운 음식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고 배고프고 헐벗었던 옛날 생각을 떠올리는 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 집 건너 피자집 치킨집 등 자고 일어나면 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아파트 단지 안에 24시간 먹거리를 나르는 오토바이 굉음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방송에서까지 나도 질세라 시도 때도 없이 먹방으로 시청자의 입맛을 자극하고 있으니 역시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먹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하게 했다.
한편으로는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방송의 공적 목표라는 순기능이 상실되는 건 아닌가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물론 먹방 프로그램이 국민의 정보전달 목적에 벗어 난다는것은 아니나  방송사마다 경쟁하듯 
먹방에 열을 올라는 처사에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식상함을 느끼는것이다.
방송의 공적 목표는 국민의 알 권리와 올바른 정보 전달 그리고 문화적인 충족 등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올바른 정보 전달이 제일 중요한 항목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현재 각 방송 매체들이 이러한 순기능을 발휘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면 대다수 국민은 아니요 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송 또한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이라는 특수성의 부여는 여타 기업과는 달리 국민의 감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국민과 가장 근접해있는 공공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티브이를 보려고 마음먹어도 자꾸만 리모컨만 만지작만지작 되게 하는 수많은 방송사,
하나같이 같은 주제 같은 관심사로 국민의 눈요깃감으로 전락해버린 많은 프로그램,
온통 예능과 먹방과 말초신경 자극으로 광고 장사에만 몰두하는, 언론이라고 위장하고
돈벌이에 급급한 요즘 방송을 보고 있자면 그 옛날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에도 울고 웃으며 감성을 자아내던 시절의 소리 하나하나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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